듣던 대로 액션이 기깔난다. 마지막에 말과 자동차가 같이 달리는 카체이싱 씬은 압권이다. <호프>가 한국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액션 영화라는 점에 이견을 달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늘어진다. 156분의 러닝타임이 모두 필요한지 모르겠다. 결국 <호프>의 중심축은 (예고편에서 이미 공개된 대로) '추격'인데, 그걸 이리저리 늘려 오래 보여준다. 서사 진행이 약해서 '아직도 추격중이야?'라는 인상이다.
모든 장면이 미학적이다. 얼마나 공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영화에서 촬영만큼 중요한 것이 리듬. 이게 늘어지다 보니 장면이 수려한데도 후반부 쯤에는 다소 지루하고 피로하다.
액션밖에 볼 게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해석할 여지가 적지 않다. 다만 그 테마가 나홍진의 전작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보았던 내용, 이미 보았던 그림이 인물과 장소만 바꾸어서 반복되는 인상. 그러다 보니 전작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내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만 이런 평가를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다. 10년의 간극에서 기대되는 변화를 관객에게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VFX가 조악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게 거슬리진 않았다. 나홍진은 1950~60년대 고전기 괴수영화를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시기 괴수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현실적인 CG가 아니라, 누가 봐도 비현실적인 형상이 영화 안을 뻔뻔하게 활보하며 주인공을 괴롭힐 때의 짜릿함이랄까. 그런 고전적인 쾌감이 이 영화에는 있다. 미장센이나 사운드에도 고전미가 묻어난다.
황정민은 존재감이 확실하다. 초반 1시간 동안 자기만의 호흡으로 영화를 끌고 가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을 여러 번 구해낸다. 조인성은 제 몫을 한다. 처음 농촌에 사는 삼촌처럼 등장했을 때 인상이 강렬하다. 정호연은 모델 출신답게 몸을 잘 쓰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성장할 여지가 남았다.
임현식 등 시니어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좋아서 이들 위주의 총격전이 펼쳐지길 바랐는데(농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총 들고 외계인과 싸우는 장면 기대되지 않는가),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현실성 없어 보이려나.
나홍진의 전작과 비교하자면, 테마와 구도는 비슷한데 질감이 다르다.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카체이싱, 숲에서의 추격전 등 못 보던 그림이 등장한다. '미지의 타인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지만, 그 타인이 시선의 주체로 부상했다는 점이 새롭다.
대규모 투자한 작품답게 애국 마케팅이 또 나오던데(이 영화 망하면 한국영화 망함) 그냥 솔직하게 평가하겠다.
지금 당장 극장에 가서 꼭 보라거나, 실망할 부분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이며 액션과 촬영만 보아도 시간이 아깝진 않다. 나홍진의 인장은 여전하며 그의 변화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팬이라면 챙겨 볼 만한 작품.
별점 ★★★☆
영화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