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발언 하나.
나는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은 박정민(<얼굴>)이 아니라 이병헌(<어쩔수가없다>)이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병헌이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그건 오늘내일 일이 아니니까) 박정민이 <얼굴>에서 그다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 <얼굴>은 처음으로 박정민의 약점을 알게 한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얼굴>에 참여한 것은 행운이다.
박정민은 지금 국내 30~40대 주연급 남자 배우 중에 연기를 가장 잘한다. 다른 배우가 특정 작품에서 박정민을 넘어서는 일은 가능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기량을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배우는 박정민이다.
그는 <동주>에서 영화의 흐름을 자신에게 돌려놓았고, <헤어질 결심>에서 단 몇 분의 출연으로 관객의 뇌리에 새겨졌다. 이건 노력뿐 아니라 재능의 영역이다. 또 유튜브에 출연한다거나, 출판사를 이끌고 바카라을 내는 등 몹시 치열하게 자기 삶의 여러 요소를 보살피며 인생의 밸런스를 잡아가는 모습이 멋지다.
하지만 적어도 <얼굴>에서 배우 박정민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건 연상호 만의 연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톤 때문이다. 어두운 애니메이션으로 필모를 시작한 연상호는 이제 실사 영화를 더 많이 찍지만, 여전히 초기 애니처럼 단선적이고 강렬한 연출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여전히 애니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즉, 연상호의 작품에 녹아들려면 현실적이고 섬세한 연기보다, 과장되고 힘 있는 연기가 필요하다. 이 특유의 맛을 잘 소화해서 뜬 배우가 <지옥> 시리즈에 등장한 '김신록'이다.
하지만 박정민은 현실 연기에 더 강점이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래서 <얼굴>에서 특히 젊은 영규를 연기할 때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그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보려면, 같이 출연한 권해효의 연기를 보면 된다. 둘은 경력도 색도 다르므로 단순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촬영 기간도 짧고, 40년 전의 말투를 구사해야 한다는 핸디캡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최우수 연기상을 줄 만한 연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제의 수상에서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납득 가능한가' 여부다. 영화제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에는 연기력뿐 아니라 영화의 흥행, 영화의 가치 등 다양한 것이 포함된다. 그런 면에서 박정민의 수상은 납득 가능했다. 그래서 별 불만은 없다.
실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일 개봉하는 <군체> 때문이다. 아마도 <부산행>을 이을 초대박 좀비 블록버스터를 겨냥하고 기획된 작품 같다. 요즘 연상호의 작품은 1) 흥행을 겨냥한 상업 영화 2) 자기 세계를 잇는 예술 영화로 나뉘는 인상이다. <얼굴>이 후자라면 <군체>는 단연 전자다.
그런데 궁금한 건, 전지현이 과연 연상호 월드와 어울릴까? 연상호 세계에 감도는 그 짙은 어둠을 멋진 옷처럼 입을 수 있을까.
다크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은 많다. 그런데 이 다크함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나홍진의 어둠은 뾰족하고 잔인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힙하다. 그래서 나홍진의 다크함을 즐기는 것은 인스타에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연상호의 어둠은 정말 어둡다. 그리고 타협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악인들과 싸우면서도, 끝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악의 얼굴과 작동 방식을 탐구할 뿐 그것의 해결에는 큰 관심이 없다.
2) 같은 예술 영화에서 그는 이런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얼굴>의 결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 같은 상업 영화가 문제다. 천만을 노리는 텐트폴 영화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악'을 덩그러니 냅두고 끝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억지심청으로 희망찬 결말을 내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가 투박해진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급하게 끝맺는 느낌이다. 예리한 사람이 투박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맘에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중요한 건 연상호 특유의 그 다크한 색이다. 구교환도, 신현빈도, 김신록도 그 색과 잘 어울린다. 특히 구교환은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배우인데, 독립영화에서 내면의 어둠을 강렬하게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전지현은 뭐랄까, 얼굴에 그늘이 한 줌 있긴 한데 되게 예쁜 그늘이다. 전지현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수렁의 끝에서 세상을 저주해도 결국에는 희망을 믿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전지현과 연상호의 만남이 궁금하다는 소리. 물론 연상호가 <군체>에서 자기 색깔을 많이 많이 희석한다면, 이런 이야기는 모두 무의미하다. 어떤 배우라도 그 위에서 뛰어놀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건 연상호 맛이 안 나서 매력이 없을 텐데. <군체>는 과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