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관객 사로잡은 연상호 좀비물의 진화

※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군체.jpeg<군체> 스틸컷

<부산행>으로 인상적인 좀비물을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고작 개봉 5일 만에 관객 수 200만을 돌파하며 심상찮은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역대급 흥행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슬롯에서는 평이하다는 평가가 우세했지만, 민심은 다르게 반응했다. <군체>는 확실히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군체>를 나란히 두고 보면 지금 극장가의 흥행 공식이 엿보인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친절한 스토리, 깨알 같은 유머, 경쟁작이 딱히 없는 이상적인 대진표, 개봉쯤에 낀 황금연휴 등.


<군체>도 이런 요소를 빠짐없이 갖췄다. 하지만 공식에 맞췄다 하여, 전부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작품만의 무언가가 필요한 법. 하여 <군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반짝이는 것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관객을 사로잡은 비결이라 표현하면 거창할까. 아래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군체>의 인기와 관련해, 두 가지에 관해 말해볼 만하다. 첫 번째는 캐릭터다. 연상호는 애니메이션으로 필모를 시작했다. 그 영향일까.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종종 현실에 있는 흐릿하고 복잡한 인간이 아니라, 특징이 뚜렷한 만화 캐릭터같이 느껴진다.


<부산행> 역시 그러하다. 각 인물은 특징이 선명해서 어떤 가치를 상징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부성애, 힘, 이기심, 동지애 같은 것들이다. 연상호는 인간 군상 위에 아사리판을 펼치고, 그들 사이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며 우리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군체>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는 자기 생존만 중요한 아저씨,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 등 연상호가 즐겨 기용하는 캐릭터가 다시 등장한다. 그들은 얼핏 보아 상투적이지만, 이런 선명함이 연상호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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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체>에 이르러 인물들은 변화한다. 영화의 중간 지점에서. 직선으로 걷던 그들은 갑자기 방향을 꺾어 다른 곳으로 내달린다. 좀비에 맞서 함께 대응하던 이들 사이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이것이 <군체>의 흥행을 이끈 첫 번째 포인트다.


변화는 주로 두 인물에게 보인다. 하나는 대테러팀장 이봉석(이중옥). 그는 오로지 임무에 몰두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보안 요원 최현석(지창욱). 그는 임무를 포기한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목표에 집착해서, 하나는 목표를 잃어서 폭주하는데, 각 배우가 그 변곡점을 맛있게 연기한다. 자칫 지루했을 뻔한 <군체>는 이 지점에서 동력을 얻어 다시 달린다.


결말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부산행>에서 연상호는 세 인물에게 세계의 구원을 맡겼다. 헌신적인 남자와, 두 여성의 연대. 이 구조는 <군체>에서도 반복된다. 다만 <부산행>에서 연대한 두 여성은 임산부와 소녀였다. 하지만 <군체>에서는 헌신적인 남자를 중심으로, 그의 전 부인과 현부인이 손을 맞잡는 파격(?)을 보여준다. 연상호의 캐릭터는 상투적인 듯 하나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군체>의 흥행을 설명하는 다른 한 가지는 '좀비의 몸'이다. 사실 좀비물은 (과장하여 말하자면) 보디호러물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인간 같지 않다. 좀비의 몸은 짐승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사물 같다. 그러니까 좀비물은 인간의 몸을 비틀고 꺾어보고 싶은 인간의 관음증에 복무한다. 그 욕망을 상상 못 한 방식으로 채우는 것이 좀비물의 과제다.


<군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좀비들의 움직임, 그 자체다. 처음 권세정(전지현) 일행 앞에 좀비가 튀어나올 때, 온 몸을 꺾으며 바닥을 슬라이딩하듯 등장하는 좀비의 움직임은 마치 잘 짜인 안무처럼 보인다.


군체3.PNG<군체> 예고편 캡처.

그뿐만 아니다. 좀비들의 형상에는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이단 합체, 삼단 합체를 한 좀비들이 인상적인데, 마치 인간으로 만든 레고 블록을 조립해 둔 것 같은 조형미가 느껴진다.


연상호는 <부산행>에서 '좀비의 움직임이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고심했다면, <군체>에 이르러 '좀비의 움직임이 얼마나 매혹적인가'에 몰두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좀비의 움직임은 일종의 퍼포먼스다. 연상호는 좀비물의 장르 안에서 인체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바로 여기에 <군체>의 의미가 있다. 좀비물은 어떤 장르와 닮았을까. 공포, 스릴러, 혹은 크리쳐. 하지만 <군체>는 좀비물을 바디 퍼포먼스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신체의 스펙터클을 선보인다. 좀비의 미학적 움직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탐색하고 또 탐미하는 장르물로서 <군체>의 성취는 독보적이다.


최근 연상호의 작품은 자기 예술적 세계를 잇는 영화와,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로 양분되는 인상이다. 후자의 경우는 관객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미덕이다. 이것은 자주 평가절하되지만, 실은 까다로운 감각이 필요하다. <군체>의 경우 그것은 캐릭터를 약간 꺾고, 좀비를 다듬는 시도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그게 별거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소금이 요리의 성패를 가르는 것처럼,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건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는 섬세한 손길이다. 다행히 연상호의 감은 살아있는 것 같다.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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