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 박해영의 여성관에 관하여

능력남 좇는 악녀 vs 손 내미는 여신

출처=JTBC Drama 유튜브.

○ 박해영 세계의 독특한 구도

박해영에 대해 갖고 있던 어떤 의심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이르러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건 박해영의 여성관과 관련이 있다.


박해영의 세계를 관통하는 주인공은 '슬롯에 섞이지 못하는 아저씨'다. 박동훈도(<나의 아저씨>), 구씨도(나의 해방일지>), 황동만도(<모자무싸>) 마찬가지다. 이들은 실력이 있지만 성정이 착해서, 비열한 술수 같은 걸 쓰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뒤처지고 외롭다.


그리고 이들을 감싸 안고 구원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것이 박해영 여주인공의 변하지 않는 특징이다. 이지안(<나의 아저씨>)은 도청이라는 설정 덕에 마치 누구도 모르는 동훈의 외로움을 '신'처럼 알아챈다. 염미정(<나의 해방일지>)의 경우는 더 극적이다. 이름도 과거도 모르고 매일 소주를 마시는 옆집 아저씨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모자무싸>에서는 더 다양한 양상이 전개된다. 변은아(고윤정)는 모두가 꺼리는 동만의 인간성과 잠재력을 알아보고 감싼다. 장미란(한선화)은 영화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동만에게 "좋아한다" 고백한다. 고박필름의 고혜진(강말금)은 이중의 짐을 진다. 남편 박경세(오정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황동만의 작품을 제작한다. 박경세는 곁에는 "이 작품에 관한 공은 다 내 거"라고 투덜대도 까르르 웃으며 "감독님 최고!"라고 말해주는 보조작가도 있다.


사실 이런 설정에는 얼마간의 위화감이 있다. 여배우 장미란은 어째서 황동만에게 공개 고백까지 했을까? 이건 동만이 꾸는 행복한 꿈인가? 박경세의 보조작가는 어째서 그의 폭주 앞에서 조금의 불쾌함도 느끼지 않고 방실방실 웃을까.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모두 공교롭게도 불쌍한 아저씨 기살리기에 동원된다.


○ 박해영 여자들의 특징

여성 구원자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변은아, 고혜진 같이 황동만을 현실적으로 이끌어주는 강인한 여신. 또 하나는 장미란이나 <나의 아저씨> 속 최유라(권나라)처럼 해사하고 아리따운데 어떤 이유에서건 외로운 아저씨를 좋아하는 요정들이다.


주인공은 여신 쪽이다. 그래서 이 아저씨들은 그녀들과 (일반 커플처럼) 동등하게 관계 맺지 못하고 숭배한다. 구씨는 염미정의 신탁을 받아 그녀를 "추앙"하고, 황동만도 은아의 동영상을 보며 감격한다.


그냥 불쌍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해영의 남자에 비해 여자들은 능력이 있는 편이다. 다만 그들은 못된 슬롯에 지쳐있고, 공교롭게도 불쌍한 아저씨만이 갖고 있는 인간성에서 위로받는다.


언뜻 보아 지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스토리지만, 구조를 보면 불쌍한 아저씨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을 야무지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위성처럼 돌고 있는 모양새다.


○ 성공은 악(惡), 성공남을 만나는 여자는 악녀

그냥 능력 있는 남성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 된다. 그런데 악녀로 찍혀서 조리돌림 당함. 박해영의 세계관에서 능력 있는 남성을 추구하는 여자는 늘 빌런의 포지션에 오른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도, <모자무싸>의 오정희(배종옥)도 능력남을 좇는 악녀들이다. 물론 그녀들은 바람도 피우고, 자식을 버리는 등 다른 악행도 저질렀다. 하지만 그녀들의 진짜 원죄는 불쌍한 아저씨의 장점을 알아보지 못하고 떠났다는 데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박해영의 세계관에서는 '성공' 자체가 일종의 악으로 취급된다. 선하게 성공하는 이는 없다. 있더라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성공은 최동현 대표(<모자무싸>)처럼 더럽고 치사하게, 혹은 도준영 대표(<나의 아저씨>)처럼 비열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이런 설정으로 인해 성공한 남성은 악녀들만큼이나 안 좋은 프레임에 갇힌다. 반대로 이런 길을 걷지 않은 불쌍한 아저씨는 무능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를 걸어서 성공한 사람도 있잖아? 그런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착한 여자도 있잖아? 이런 질문에 대해 박해영의 작품은 답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박해영의 세계 중심에는 슬롯에서 외면받는 아저씨가 있다. 그의 뮤즈는 아무도 모르는 그의 사랑스러움을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멋진 여성이다. 이 아저씨에게는 끈끈한 형제도, 친구도 있고 종종 옆에서 치어리딩을 해주는 귀여운 여성도 있다. 그들의 대척점에는 비열한 능력남이 있고, 그들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면서도 성공하기 위해 능력남을 택하는 악녀가 있다. 그녀들은 가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지만, 이런 사정은 진솔한 대화가 아니라 비겁한 변명처럼 연출된다.


○ 보편적인 인간, 관계의 상실

사실 이런 관계가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박해영의 작품에서는 오로지 이런 유형만 등장한다는 것이 의아하다. 어째서 여기에는 능력 있는 여성이 능력 있는 남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례가 없을까. 성공, 능력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은 어째서 죄악시되는 걸까. 특수한 관계 만이 반복되고 보편적인 관계는 축소된다면, 이 세계는 '왜곡되었다'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이 글은 여성관을 중심으로 풀어냈지만 실은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박해영의 작품은 '능력이 없어도 괜찮아'가 아니라 '능력을 추구하는 건 나빠'에 가까운 인상이다.


이러한 작품을 즐겁게 소비하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편향성이 있고, 그건 언급이 꼭 필요한 문제다. 또 박해영의 다음 작품에는 더 다양한 인물과 관계가 등장하였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정작 박해영은 지금 누구보다도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 자체가 성공한 여성이 되었고, 앞으로도 성공의 속성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품은 작가의 자식과 같아서, 똑같지 않아도 얼마간 닮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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