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1
달력은 낡은 채무처럼 벽에 걸려 있고
초침은 비루한 보폭으로 방 안을 횡단한다
나아진다는 거짓말을 믿기엔 너무 많이 젖어버린 오후
수면은 이제 내 가느다란 목울대를 연모한다
성장이라는 부표는 애초에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내 발목을 낚아채는 것은 단단한 인력이 아니라
오래된 일상이 토해놓은 눅눅한 진흙의 농도
폐부로 밀려드는 것은 산소가 아니라 정지된 시간의 비린내다
비명은 물방울 속에 가두어 두기로 했다
이곳에서 버티는 몸짓이란 느리고 기괴한 발레일 뿐
내일이라는 해안선은 소문 속에만 존재하고
나는 다만 고여 있는 오늘을 치욕처럼 호흡한다
그러나 보아라
이 무거운 수심이 나를 완성한다
가장 깊은 바닥에 닿아서야 비로소 만져지는
나를 침몰시키던 이 비열한 무게가 사실은
나를 밀어 올리던 유일한 생의 근육이었다는 것을
수면 밖의 태양은 성공한 자들의 직사광으로 빛나겠지만
이곳에 닿은 빛은 수만 번 꺾이고 부서지며
단 한 번도 명명되지 못한 은빛 흉터로 무늬를 새긴다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은 심해의 호흡법을 배운다
성장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불온한 진화
나는 이제 수평선을 질투하지 않는다
나를 감싼 이 투명한 감옥 속에서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나의 파멸을 사랑하기로 한다
오늘 아니면 언젠가
권태에 틈에서 기쁘게 익사하는 법을 배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