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
내 기억의 가장 첫 페이지엔 언제나
하얗고 커다란 만월이 떠올라 밤을 덥힙니다
두 손으로 감싸도 넘쳐흐르던 그 벅찬 유백색의 풍요
온 세상의 다정함이 그 둥근 곡선 안에 가득 차 있던 시절이 있었지요
시간이 흘러 빛의 테두리가 조금씩 얇아지고
이제 가녀린 초승의 눈썹으로 내 품에 누웠습니다
꽉 차던 부피가 비워진 자리가 조금은 야속하지만
그것마저 사랑이라 나는 자꾸만 가만가만
기억으로 쓰다듬어봅니다
커다란 빛이 떠나간 자리에 들어찬 것은
비로소 내 귓가에 닿는 당신의 가장 은밀한 고백
살점이 빠져나간 얇은 피부 너머로
당신의 심장 소리가 조그맣게
하지만 선명하게 속삭입니다
두근 두근
그 여린 고동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만월의 껍질이 얇아질수록 더 투명하게 울려 퍼지는
이 뜨겁고도 정직한 생의 리듬을 나는 손바닥으로 읽어내립니다
하얗고 커다란 달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기울어 갈수록 두 눈에 꼭 맞게 쏙 들어오던
나는 그 좁아진 은빛 곡선 아래 숨겨진
당신의 가장 깊은 숨결을 탐하며 다시 한번 지독한 사랑을 배웁니다
아 달은 차오르기전부터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얗고 커다란
나의 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