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
그때 당신의 입술에 닿았던 것은
나의 공포이기 이전에 당신의 내일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던
나의 가장 무겁고도 서글픈 배려였습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나의 빈손을 보며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안전은
당신의 삶에 감당 못 할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나의 살핌은 늘 칼날처럼 예리하고 섬세했으나
그것이 당신의 살결에는 차가운 금 긋기로 닿았음을 압니다
당신의 미래를 가로막았던 것은 나의 비겁함이었지만
동시에 당신이 혼자 짊어질지 모를 비극으로부터
어떻게든 당신을 떼어놓으려 했던
나의 비극적인 다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만 알아 당신을 지키는 법에는 서툴렀습니다
당신이 가진 물음들
내가 건넨 비루한 질문은
사실 당신의 안녕을 확인받고 싶었던 나의 간절한 확인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당신을 지키고자 했던 일들
모든 것이 파멸이 될 속에서도 적어도 당신을 지켜야 할 일들이라 믿었습니다
여기 낙엽 아래 숨겨둔 그 시절의 잔인한 배려들을 꺼내 봅니다
나라는 난파선에 당신마저 가라앉지 않기를 바랐던
나의 가장 처절하고 비릿한 사랑
그래서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당신을 외롭게 만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나의 계산된 바카라임들이 당신에겐 상처였음을
그러나 그 상처의 밑바닥엔 당신의 삶을 지켜내려던
나의 지독하고도 오묘한 진심이 있었음을
그리고 비루하고 모자란 서툰 배려였음을
진창에서 꺼낸 마음을 꺼내어 내 품에 안아봅니다
죽을것 같은 처연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