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되는 일

#826

by조현두

이제 나의 국경을 넘어 당신의 영토로 이주합니다

그것은 온전한 투항이며

내 생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서술의 펜대를 당신의 손에 쥐여주는 일입니다


당신은 이제 나라는 문장을 제멋대로 분절할 것입니다

어느 단어를 도려내고어느 행에 밑줄을 그을지

내가 지닌 고유한 채도를 어떤 망각으로 덧칠할지

그 모든 편집권은 오직 당신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나에 대한 해석을 끝낸 당신이 희미한 미소를 지을 때

나는 당신의 기억이라는 유리관 안에서

당신이 빚어낸 오해의 형상으로 박제되어 가지만

담장 너머 현재의 나는 그 정지된 소란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나의 진실이

당신의 가벼운 안도로 재편된다 해도

과거가 된 나는 오직 당신의 시선 끝에서만

잠시 숨을 얻는 유령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문법으로 교정된 내가 당신의 세계를 평정할 때

당신은 평온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슬픈 이유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죽음으로 장례지내어 처연하게 마주하고 사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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