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
나의 삶이 온전한 내 소유라고 믿는 오만은 얼마나 눈먼 것인가. 곰곰이 따져보면 나의 생은 누군가가 기꺼이, 혹은 어쩔 수 없이 내어준 자리들의 총합이다. 내가 마시는 공기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의 연장일 것이며, 내가 걷는 길은 누군가가 끝내 도달하지 못한 보폭의 누적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상실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가련한 기생들이다.
헤어진 인연이나 차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숨결들은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라는 방식의 현존으로 내 삶을 지탱한다. 그들이 치른 희생의 대가가 지금 나의 안온함이라면, 나는 그 빚을 갚기 위해 기꺼이 불편해져야 한다. 죄바카라감은 단순히 아파하는 데서 그칠 때만 퇴행적이다. 그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동력이 될 때, 죄바카라감은 비로소 한 존재의 가장 고귀한 윤리가 된다.
세속적 성공이 숫자의 축적이라면, 가치지향적 삶은 의미의 경작이다. 내가 나의 삶을 가치 있게 가꾸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타인의 희생을 무가치한 소멸이 아닌 숭고한 전수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숙이 그들의 부재를 헛되지 않게 증명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저편에서 화해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절망의 겨울에 머물지 말자.
우리가 마주할 봄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오는 계절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몫까지 치열하게 가치를 일구어낸 끝에 겨우 당도하는 보상이어야 한다. 그 눈부신 언덕에서, 비로소 나의 삶이 타인의 희생 앞에 떳떳한 열매가 되었을 때, 우리는 미안함이라는 해묵은 외투를 벗고 비로소 만나게 될 것이다.
따뜻한 봄 볕 아래서,
소멸할듯 포옹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