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7
잘 잤냐고 묻는 당신의 말에는 가시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병을 돌보는 척하며
조금씩 더 깊은 구렁으로 내려가기로 했지요
질서 있는 집을 떠나 당신의 그늘에 누운 것은
내 삶에 가장 정갈한 오답을 적어 넣는 일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남은 당신의 억센 손길들을
나는 나를 향한 지극함으로 읽었습니다
부드러운 살결이 붉게 멍들어가는 시간들처럼
우리는 그것을 아픔이라 부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섞여 들어가는 무늬라 불렀습니다
당신을 닮아 쓴 약 한 알을 혀끝에 올리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환자와 의사가 되었고
내게 남겨진 당신의 무거운 기척들은
당신이 나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보여주는
오랜 밤낮의 고요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밑바닥을 가장 먼저 보았다는 자부심
당신의 침묵 속에 나를 가두고
나의 의지를 당신의 발치에 소리 없이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가장 완벽한 사랑이 되었지요
보고 싶어요
나를 다시 한번 배려의 이름으로 허물어주세요
우리는 다시 정갈한 가면을 쓰고 마주 앉아
우리의 중독이 얼마나 운명적인지
몰락이 얼마나 찬란한지 보듬어봐요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안부의 잠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