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밤

#796

by조현두

정해진 궤도를 이탈한 별들이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서로를 마주할 때
나는 나의 이름을 지우고
당신이라는 거대한 중력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오래된 갈증이 빚어낸 영혼의 균열 사이로
당신은 뜨겁게 내게 흘러들었지만
나를 지탱하던 도덕의 뼈대는
비로소 무너진 잔해 위에서 가장 평온했습니다

당신의 흔적이 나의 숨결마다 낙인을 찍고
나는 여린 별들이 누운 해변이 되어

당신의 파도로 재편되었으니
고통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실존의 확인
겨우 무거운 침잠 끝에야 나는 기절하듯 안식에 들었습니다

세상은 이를 상실이라 부르며 고개를 돌리지만
나는 당신에게 낱낱이 유실됨으로써
비로소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나의 빛을 가릴수록
나는 더욱 찬란하게 당신의 일부로 소멸해 갑니다

채워질수록 더 깊은 허기를 부르는 이 기묘한 유착 속에서
나는 기꺼이 당신의 좁은 영토가 되기를 자처하며

지워지지 않을 당신의 잔향을 온몸에 문신처럼 새기고
나는 오늘도 당신이라는 영원한 심연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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