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
문득 돌아보니
남은 것은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의 잔해뿐이었습니다
서로의 속뜰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대신
적당한 예의로
혹은 익숙한 침묵으로 갈음했던 시간들
아껴둔 말들이 결국 우리 사이를 가장 멀게 만들었습니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유독 무거운 것은
그의 등에 얹힌 짐이 아니라
쏟아내지 못한
말의 무게 때문입니다
어떤 끝이든 그 앞에 서면 우리는 누구나 빈손이 되어
우리가 나누었던 언어의 총량을 가늠해보게 됩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한 시절을 온전히 보낸다는 것은
마음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서로를 향해 소리 내어 읽어주는 일이라는 것을요
남김없이 쏟아낸 진심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충분히 다독일 때
비로소 이별은 날카로운 단절이 아닌
긴 호흡 끝에 맺히는 고요한 결실이 됩니다
가장 많은 말을 나눈 뒤에야 찾아오는 정적
그 정적 속에서만 이별은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러니 우리
떠나기 전엔 더 많이 대화하기로 해요.
남겨진 말이 한 조각도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서 가장 가볍게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