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우편함 앞에서 헤어질 결심

#791

by조현두

어떤 문장들은 수신인을 찾지 못한 채
짐승의 뼈처럼 하얗게 얼어붙는다
당신의 낡은 주소 위로 곪아버린 진심을 적어 보냈으나
열리지 않은 우편함은 차가운 설원 아래 매립되었고
내가 보낸 말들은 영원한 미결로 숨 쉰다

당신이 그 봉투를 영원히 뜯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읽히지 않은 자백은 잉크가 번지지 않은 채
가장 순결한 통증으로 남을 테니
하지만 침묵으로 쌓아 올린 그 하얀 벽 앞에서
나의 내부엔 자꾸만 붉은 맥박이 돋아나고
아물지 않은 기억들은 늑골 사이에서 지독한 환상통을 앓을 뿐

서로를 할퀴며 지나온 그 혹독한 계절은
그저 얼음처럼 단단해진 고독을 깨뜨려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려 했던 어느 서툰 겨울의 본능이었다

차가운 외면 뒤에서 나는 여전히 당신이라는 가장 뜨겁고 질척한 계절을 수사한다
그래, 늙은 우편함의 먼지를 닦을 때 유예된 봄은 비로소 당신의 살결 위에서 완성된다
당신이라는 계절이 다시 흐르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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