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는 안갯속을 표류한다

#790

by조현두

어떤 진실은 안개 속에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흔적들은
지우려 할수록 덧나는 환상통이 아니라
서로의 심연을 확인했던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나는 당신이라는 파도 앞에서
단단한 냉정함 따위는 진작에 잃어버리고
완전히 그리고 기쁘게 붕괴되었다

무모했던 몰입의 나의 비겁함은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숨을 멈췄던 나의 서툼

차마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돌아선 것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잉크가 물에 번지듯 서로에게 침식되어가는
그 지독한 무게를 견뎌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구석에 던져둔 차가운 문장들 뒤에서
나는 여전히 미종결된 우리의 페이지를 넘긴다
먼지도 없이 아물지 않은 자리가

여전히 뜨겁게 박동하는 것은
당신이 돌아올지 모를 유일한 귀착지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당신이 다시 문을 두드리는 날
나의 붕괴는 비로소 온전한 안식이 되고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이 사랑하리

그것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당신이라는 바다를 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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