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이 옛것을 이어 쓰는 법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와 미쓰비시 1호관

bycitevoix



00 인파 뒤의 정원


나카도리의 인파를 빠져나와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Marunouchi Brick Square)로 향했다. 입구 조형물 꼭대기에 시계가 올라앉아 있어, 멀리서 보면 시계탑 같다. 웅장하면서도 오래된 거리의 풍경을 옮겨 온 듯한 모습 아래 좁은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방금까지 귀를 채우던 거리의 소음이 한 겹 걷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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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들 사이에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나무와 꽃 사이로 분수가 물을 뿜고, 정원 한쪽에는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유럽의 거리에 들어선 것 같은 첫인상이었다. 은은한 버터 굽는 냄새와 꽃향기가 섞여 흘렀고, 벤치마다, 분수 가장자리마다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불과 몇 걸음 차이인데 공기가 이렇게 다르다. 길을 향해 활짝 열어 둔 오테마치 포레스트의 숲과 달리, 이 정원은 좁은 입구를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빌딩 숲 한가운데 숨겨 둔 오아시스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고개를 들면, 머리 위로 하늘이 네모나게 잘려 있다. 이 조용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01 타워의 발밑


답의 일부는 올려다보면 보인다. 정원을 둘러싼 건물 뒤로 34층짜리 마루노우치 파크빌딩(Marunouchi Park Building)이 솟아 있다. 그런데 이 타워는 정원 쪽으로 곧장 내려오지 않는다. 한 발 물러선 타워 아래로,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의 낮은 상업동이 앞에 선다. 2009년 9월 문을 연 브릭스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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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시계 아래 서면 그 뒤로 고층 타워가 배경처럼 서 있다. 둘의 대비는 선명하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눈앞의 입구가 사람의 눈높이를 붙잡고, 타워는 뒤로 물러나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이 사람 가까이에서 낮아지는 방식은 마루노우치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나카도리 편에서 옛 빌딩들이 31미터 높이로 맞춰 온 처마선을 보았다. 이 지구의 새 빌딩들은 그 높이 근처에서 저층부와 고층부를 나눠 예전 거리의 스카이라인을 이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이 마주하는 것은 벽돌과 돌로 마감한 몇 층짜리 건물이다. 170미터에 가까운 타워는 그 뒤에 있다.



02 사지 않아도 머무는 자리


그렇다면 이 정원은 누구를 위한 자리일까. 공식 안내는 이 정원을 '1호관 광장(一号館広場)'이라 부르며, 정원 한쪽의 벽돌 건물인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과 브릭스퀘어로 둘러싸인 녹음이 우거진 광장이라고 소개한다. 꽃과 분수가 있고, 오픈 카페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상점에서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미술관 표를 끊지 않아도 이 정원에는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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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동에도 사람을 불러 모으는 가게는 있다. 1층의 에쉬레 메종 뒤 뵈르(Échiré Maison du Beurre)는 프랑스 발효 버터 에쉬레가 200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 전문점이다. 정원까지 흘러나오던 버터 냄새의 출처가 여기다. 그런데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결국 앉을 자리와 그늘이다. 사람은 의자가 많고 큰 나무가 많은 곳에 모인다. 가게를 찾아온 사람과 지나가던 사람이 정원에서는 같은 벤치를 나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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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퀘어가 내건 말은 "활기와 안식(賑わいと安らぎ)"이다. 상점이 모인 건물이 쇼핑의 활기만큼이나 쉬어 가는 자리를 앞세웠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카도리에서 사람을 붙잡은 것이 살 수 있는 자리보다 머무를 수 있는 자리였듯, 이곳에서도 건물은 가장 좋은 땅을 매장이 아니라 정원으로 내어 놓았다. 길 위에서 시작된 쓰임의 방식이 사유지의 안쪽까지 이어졌다.



03 가장 새로운 옛 건물


정원 한쪽을 막아선 붉은 벽돌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가지런히 쌓인 벽돌 벽 위로 돌로 두른 창틀이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지붕에는 뾰족한 첨탑이 줄지어 솟아 있다. 한 세기는 족히 버텨 온 건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건물이 완공된 해는 2009년, 뒤편의 34층 타워와 같은 해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옛 건물일까, 새 건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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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쓰비시는 마루노우치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도쿄역도 아직 없던 시절이다. 1894년, 그 땅에 처음 세운 사옥이 미쓰비시 1호관이다. 설계는 로쿠메이칸(鹿鳴館)과 니콜라이당(ニコライ堂)을 지은 영국인 건축가 조사이아 콘더(Josiah Conder)가 맡았다. 붉은 벽돌로 쌓은 3층짜리 사무소 건물이었다.


1호관을 시작으로 비슷한 벽돌 사무소 건물이 바바사키도리(馬場先通り)를 따라 차례로 들어섰고, 1911년 무렵에는 13동이 한 거리에 늘어섰다. 사람들은 이 거리를 런던에 빗대 '한 블록의 런던', 잇초 런던(一丁倫敦)이라 불렀다. 오늘날 마루노우치를 가득 채운 오피스 타워들의 역사는 결국 이 작은 벽돌 건물 한 채, 이 거리의 첫 장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첫 장은 한 번 지워졌다. 전후 고도성장기, 마루노우치의 벽돌 건물들은 하나둘 현대식 빌딩으로 바뀌었고, 1968년 미쓰비시 1호관도 해체됐다. 그 뒤 40년 넘게 이 자리에 첫 사옥은 없었다. 2009년, 마루노우치 재개발의 한 부분으로 1호관은 같은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남아 있던 설계도와 사진, 해체 당시의 실측 기록이 복원의 근거가 됐다. 외벽을 채운 붉은 벽돌 230만 개는 중국의 공장에서 새로 구워 왔다. 겉모습은 1894년을 따르되, 벽돌 하나하나는 21세기에 구운 것이다. 이듬해 이 건물은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원래 건물에 들어 있던 은행의 영업실은 지금 카페 1894(Café 1894)가 되어, 높은 천장 아래로 사람들을 맞는다. 한때 돈이 오가던 자리에 이제는 머무는 시간이 오간다.


사라진 건물을 똑같이 다시 짓는 일을 두고 모조품이라고 부르는 시선도 있다. 원본은 이미 사라졌고, 지금 서 있는 것은 그 모습을 되살린 새 건물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1호관 앞에 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이 건물이 원본이냐 아니냐보다, 이 건물이 이 자리에 다시 섰다는 사실이 도시에 무엇을 돌려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루노우치를 걷는 사람은 이제 이 거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복원은 과거를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도시가 자기 출발점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04 새것이 옛것을 이어 쓰는 법


미술관 앞을 지나 다시 정원에 섰다. 새로 지은 브릭스퀘어인데도, 이곳에 서면 새 건물이라는 느낌보다 오래된 거리에 들어선 느낌이 먼저 든다. 낮게 내려앉은 저층부, 벽돌과 돌의 질감, 건물 사이에 비워 둔 정원이 그 느낌을 만든다. 새 건물들은 되살린 1호관을 중심에 두고 맥락을 맞췄다. 옛 거리의 높이를 이어 가라는 요구도, 이곳에서는 제약이라기보다 설계의 기준으로 읽혔다. 규칙을 영리하게 쓴 흔적은 건물의 크기에도 남아 있다. 파크빌딩은 도쿄역이 쓰지 않은 용적에 더해, 1호관을 미술관으로 되살리며 생긴 용적까지 넘겨받아 타워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건물을 되살리는 일이 곧 새 건물을 세우는 근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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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라고 하면 흔히 오래된 것을 지키는 일과 새것을 세우는 일을 서로 반대편에 놓는다. 이 한 블록은 그 사이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라진 첫 건물은 제자리에 되살리고, 그 곁의 새 건물은 몸을 낮추고 사람이 머물 빈자리를 먼저 떼어 놓는다. 정원에 들어서며 유럽의 거리에 온 것 같다고 느낀 것은 이 땅이 한때 런던이라 불렸기 때문만이 아니다. 새 건물이 옛 건물 곁에서 물러설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라진 첫 장은 되살리고, 새로 짓는 일은 그 곁을 맞추는 이런 도시재생이 우리 도시에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같은 거리에는 한 번도 헐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 온 건물도 있다. 새로 지은 건물과 다시 세운 건물 다음으로, 끝내 남겨 둔 건물을 찾아가 본다.


글, 사진 | citevoix

내용 참고 | 미쓰비시지쇼, 미쓰비시지쇼셋케이,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 AFPBB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