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남겨 두는 것도 설계다

메이지생명관

bycitevo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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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헐리지 않은 건물


황거 해자를 따라 난 대로에 서면, 늘어선 유리 타워들 사이로 유독 무거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흔 해가 넘은 건물의 돌 표면이 뜻밖에 깨끗했다. 오래 버틴 건물이라기보다 잘 돌봐 온 건물이었고, 그 덕에 과거의 건축양식이 주변 타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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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돌기둥이 정면을 따라 줄지어 서서 지붕 아래 처마를 떠받친다. 기둥머리마다 잎사귀 장식이 새겨진 열주(列柱)다. 지금까지 이 연작에서 두 가지 방식을 보았다. 브릭스퀘어는 옛 거리의 결을 따라 새로 지었고, 미쓰비시 1호관은 사라진 건물을 같은 자리에 다시 쌓았다. 메이지생명관(明治生命館)은 세 번째 방식이다. 이 건물은 1934년에 지어진 뒤로 한 번도 헐리지 않았다.



01 1934년의 열주


메이지생명관은 3년 7개월의 공사 끝에 1934년 3월 완공된 메이지생명보험의 본사 건물이다. 설계는 도쿄미술학교 교수였던 건축가 오카다 신이치로(岡田信一郎)가 동생 쇼고로와 함께 맡았다. 서양 고전주의 건축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이 건물은 지상 8층, 지하 2층의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 위에 돌의 옷을 입혔다. 이 건물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은 국가였다. 1997년, 메이지생명관은 쇼와 시대의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지은 지 60여 년 된 오피스 빌딩이 사찰이나 성곽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그 60여 년 동안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02 점령기의 회의실


전쟁이 끝난 1945년 9월, 이 건물은 미군에 접수되어 미 극동공군사령부로 쓰였다. 되돌려받은 것은 1956년 7월,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2층의 회의실은 연합국최고사령관의 자문기관인 대일이슬롯(対日理事会)의 회의장이 됐다. 1946년 봄 첫 회의가 열렸고, 1952년까지 이어진 회의에 연합국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도 여러 차례 참석했다. 전후 일본의 방향을 논의하던 자리가 바로 이 건물 2층이었다. 흔히 맥아더가 이 건물에서 일했다고 기억되지만, 그의 집무실은 해자를 따라 조금 더 남쪽의 다른 건물에 있었다. 메이지생명관은 그 총사령관이 회의를 위해 찾아오던 건물이었다. 지금 그 회의실은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점령기의 결정들이 오가던 방이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03 남기면서 짓는 법


2000년대에 들어 이 필지에도 재개발이 찾아왔다. 그때 메이지생명관은 통째로 남았다. 외벽과 창, 장식은 물론 1층의 영업실과 2층의 회랑까지, 준공 당시의 모습을 되살리며 보존됐다. 새 타워는 그 뒤편에 섰고, 두 건물은 유리 지붕 아래 아트리움과 통로로 이어졌다. 문화재를 온전히 남기는 개발에 길을 열어 준 법과 제도가 이 공존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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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리움에 들어서면 현대식 건물이 옛 건물을 통째로 품은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유리 지붕 아래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돌벽과 기둥에 새겨진 고전주의의 디테일이 바깥에서보다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옛것은 새것 안에서, 새것 덕분에 오히려 더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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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퀘어, 미쓰비시 1호관, 메이지생명관. 세 건물은 한 동네 안에서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대했다. 새로 짓되 옛 높이를 따랐고, 사라진 것을 다시 쌓았고, 남아 있는 것을 끝까지 지켰다.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니다. 개발이라고 하면 헐고 새로 올리는 일을 먼저 떠올렸다. 아트리움의 유리 지붕 아래, 아흔 해 넘은 돌벽이 새 타워와 한 공간에 선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개발은 무엇을 새로 세울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먼저 정하는 일이다. 그대로 남겨 두는 것도 적극적인 설계다.


해자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업무지구가 끝나고 공원의 숲이 시작된다. 맥아더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글, 사진 | citevoix

내용 참고 | 메이지야스다생명, 문화청 문화유산 온라인, 치요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