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하나가 길 위에 놓이기까지

마루노우치 나카도리

bycitevoix



00 주말의 업무지구


도쿄역 답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도를 따라 들어선 마루노우치 나카도리(仲通り)는 주말 점심시간의 인파로 가득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과 쇼핑백을 든 사람들 사이로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섞여 지나갔다. 마침 플리마켓이 열린 날이어서 길 한편에 늘어선 좌판 앞으로 사람들이 겹겹이 모여 있었다.



인파에 떠밀리듯 걷다가 마루노우치 빌딩 로비로 들어서고 나서야 거리를 제대로 내다볼 수 있었다. 창 너머로 줄지어 선 카페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커피와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앞으로 플리마켓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길 건너편 명품 매장 쪽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사이를 그저 목적지를 향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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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대기업 본사가 모인 도쿄 한복판의 업무지구에 주말 한낮 이만큼의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게 새삼 낯설었다. 평일 내내 붐비다 주말이면 텅 비는 서울의 업무지구에 익숙한 눈에는 이 거리가 다른 도시처럼 보였다. 이 거리의 설계를 맡아 온 미쓰비시 계열의 설계사 미쓰비시지쇼셋케이(三菱地所設計)는 나카도리가 "도시의 거실"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거실은 원래 누구의 것이었을까.



01 두 개의 사도가 하나의 길로


나카도리는 한 회사의 땅에서 시작된 길이다. 황거 해자를 따라 난 공도와 도쿄역 앞 공도 사이, 그 한가운데로 미쓰비시가 소유한 사도(私道) 두 개가 나란히 지나고 있었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 미쓰비시지쇼(三菱地所)는 붉은 벽돌 사무소 건물들을 철근콘크리트 빌딩으로 바꾸는 마루노우치 종합개조계획(丸の内総合改造計画)을 추진하며 이 두 사도를 하나로 합쳤다. 각각 폭 열두세 미터 남짓이던 두 길은 그렇게 폭 21미터의 나카도리가 됐다.



로비를 나와 다시 길을 걷다 보면 묘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양쪽으로 빌딩이 빽빽한데도 고개를 들면 하늘이 넉넉하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길가 건물들의 처마선이 대부분 비슷한 높이에서 끊겨 있다. 31미터. 전편에서 다룬 100척 높이 제한은 이미 풀렸지만, 그 기준선만은 처마의 높이로 이 거리에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었다. 설계사는 건물 높이가 길 폭의 약 1.5배인 이 비례를 걷는 사람에게 이상적이라고 설명한다. 하늘을 잃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감싸이는 느낌.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답답하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지금 이 길은 치요다구가 관리하는 공도다. 한 회사의 사유지가 구의 도로가 되었으니, 소유로만 보면 나카도리는 이미 모두의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이 처음부터 붐볐던 것은 아니다. 오후 3시면 은행과 증권사의 셔터가 일제히 내려가고, 주말이면 인적이 끊기던 곳이 나카도리였다. 비례가 잘 짜인 길도, 공도라는 이름도 사람을 붙잡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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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길을 바꿨을까. 길 위의 테이블 하나를 떠올려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공도 위에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으려면, 땅을 가진 쪽과 길을 관리하는 쪽과 그 의자를 매일 펴고 접을 쪽이 모두 필요하다.


나카도리에서는 그 역할을 여러 주체가 나눠 가졌다. 1988년 오테마치·마루노우치·유라쿠초, 이른바 대마루유(大丸有) 지구의 땅 주인들이 협의회를 꾸렸고, 1996년 이 협의회는 도쿄도, 치요다구, JR동일본과 함께 앉는 간담회로 넓어졌다. 2000년 그 자리에서 지구의 첫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도시 만들기)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나카도리에 주어진 역할은 분명했다. 1층에는 가게를, 넓힌 보도에는 쉴 자리와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2002년에는 거리를 운영할 비영리법인 리가레(Ligare)가 세워졌다. 리가레는 옥외광고 수입으로 거리의 행사와 실험을 꾸린다. 거리에서 번 돈이 다시 거리로 돌아온다.


길 위의 실험은 이보다 앞서 시작됐다. 걷다가 마주친 조각 작품들도 그 흔적이다. 1972년 미쓰비시지쇼는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과 함께 나카도리를 따라 조각을 상설로 세웠고, 1985년부터는 점심시간에 차량 통행을 막았다. 2014년에는 일주일 동안 낮 시간대에 약 500미터 구간을 보행자에게 내줬다. 여기까지는 길에서 차를 빼는 실험이었다.



차를 뺀 자리에는 무엇을 채워야 할까? 같은 해 나카도리가 국가전략특구의 도로점용 특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공도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상시 내놓을 수 있게 됐다. 2017년부터 리가레가 운영하는 어반 테라스(Urban Terrace)가 자리를 잡았고, 2019년에는 100시간 동안 차를 막고 도로에 천연잔디를 깐 마루노우치 스트리트 파크(Marunouchi Street Park)가 열렸다. 실험은 해마다 이어져, 2025년 9월 회차에서는 보도와 차도를 가르던 볼라드까지 걷어냈다. 그날 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던 길 위의 자리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제야 짐작이 갔다. 테이블 하나가 길 위에 놓이기까지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03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거리


로비 창 너머로 보았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이끌려 주말의 업무지구까지 왔을까?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 얀 겔(Jan Gehl)은 『Life Between Buildings』(1971)에서 도시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셋으로 나눴다. 해야 해서 하는 필수 활동, 환경이 허락할 때만 하는 선택 활동,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기에 생기는 슬롯적 활동. 겔에 따르면 공간의 질이 좋아져도 필수 활동은 크게 늘지 않는다. 늘어나는 것은 선택 활동이고, 선택 활동이 늘면 슬롯적 활동이 그 뒤를 따른다.


그날의 나카도리가 꼭 그랬다.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가로지르던 사람들의 걸음이 필수 활동이라면, 테라스에서 담소를 나누고 플리마켓 좌판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의 시간은 선택 활동이다. 그리고 서로 모르는 그 사람들이 한 거리에 뒤섞여 만들어 낸 북적임, 그 자체가 슬롯적 활동이었다. 사람들이 몰린 곳은 명품 매장 앞이 아니라 테라스와 좌판 쪽이었다. 사람을 붙잡은 것은 무언가를 살 수 있는 자리보다 머무를 수 있는 자리였다. 겔이 인용한 스칸디나비아의 옛 속담처럼, 사람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온다.


양복 차림의 사람들은 그날도 있었다. 다만 이제 그들은 이 거리의 여러 얼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편에서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를 다루며, 사유화된 타워들 사이에 남은 한 뼘의 공공성이 다시 넓어질 수 있는지 물었다. 나카도리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땅 주인과 행정과 비영리법인이 반세기에 걸쳐 차를 빼고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거듭하는 동안, 넥타이를 맨 사람들만 오가던 길에 여행객과 가족이 들어왔다. 설계가 판을 깔고, 그 위를 채운 콘텐츠가 사람을 불러들였다.


공공 공간은 누가 땅을 소유했느냐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가 그 길을 쓰느냐로 정해진다. 인파를 빠져나와 다시 브릭스퀘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카도리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붉은 벽돌 건물이 둘러싼 작은 중정이 나타난다. 그 중정은 또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머물게 하고 있을까.


글, 사진 | citevoix

내용 참고 | 미쓰비시지쇼셋케이, 대마루유 마치즈쿠리 협의회, 리가레(Ligare)

참고문헌 |

Gehl, J. (2011). 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 (J. Koch, Trans., 6th ed.). Island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