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
도쿄의 관문이자 상징인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는 1914년에 완공됐다. 건축가 다쓰노 긴고에 의해 설계된 이 건축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좌우 대칭 구조에 철골 구조를 적용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에서도 드문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섞은 외벽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상시키며, 남북과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세 개의 돔은 도쿄역에 압도적인 위용을 더했다.
황거와 이어지는 도시 축선 위에 자리한 마루노우치 일대는 일찍이 금융·행정 지구와 함께 근대 일본의 국가 중심 공간으로 기능했다. 고풍이 느껴지는 건축 양식 덕분일까, 마루노우치 역사는 준공 이후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의 공습이 건물을 덮쳤고 그 과정에서 3층 구조와 두 개의 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예산 부족과 자재 축소로 역사는 2층으로 재건되었고, 돔 형태는 낮고 밋밋한 지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번 지워진 것은 다시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듯, 과거 제국의 상징이던 도쿄역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소된 형태로 사용되었다.
2000년 이후, 일본은 도시재생특별조치법 시행과 함께 마루노우치 일대를 글로벌 CBD로 변화시키고자 도시의 중심 축이자 핵심 자산인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를 중심으로 도시 재편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복원 공사는 5년에 걸쳐 진행되어 2012년,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도쿄역 마루노우치 출구로 나오면 가장 먼저 넓은 광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얀 화강암과 잔디가 펼쳐진 공간 너머로는 마루노우치의 고층빌딩들이 둘러서 있고, 마루노우치의 뜻인 "원 안", "동그라미 안"처럼 마치 붉은 벽돌의 역사를 도시가 원을 그리며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장의 중심, 역사 정면으로 길게 뻗은 선은 넓은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이어진다. 도쿄역과 황거를 연결하는 중앙대로 '교코도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걷는 산바카라로지만, 본래 이 길은 천황의 행차를 위해 계획된 공간이었다. 도쿄역 중앙에 설치되어 있던 황실 전용 출입구와 연결되는 이 길은, 교코도리라는 이름 자체로 당시의 위계를 드러낸다.
역에 도착한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황거를 향하고, 황거에서 바라본 도시 역시 도쿄역을 중심으로 질서를 이룬다. 도시의 중심에 역을 세우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계획 방법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짧은 거리로 도시에 닿게 하려는 효율의 계산이자, 도시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축으로 정렬하려는 의도의 결과다. 근대 일본은 그 계산과 의도를 황거와 도쿄역을 잇는 시각적 축 위에 그대로 새겨 넣었다.
그러나 전후 산업화를 통해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역사의 풍경은 달라졌다. 마루노우치 광장은 차량 중심의 교통 공간으로 바뀌었고, 교코도리 역시 도로의 기능으로 편입되면서 사람보다 자동차의 이동을 우선시했다. 철저히 경제적 관점에서 설계된 광장은 교통 결절점으로서는 극대화되었지만, 머무는 공간이기보다 통과하는 장소로 남으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공 공간의 역할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도쿄역 복원 사업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역사 복원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중심 공간을 자동차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역사 복원과 함께 진행된 광장 정비를 통해 교코도리는 차량 중심의 도로에서 보행 중심의 공간으로 재편되었고, 역사 중앙의 권력의 축이던 황실 전용 출입구 역시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지날 수 있는 출입구가 되었다.
그럼에도 도쿄역과 황거를 잇는 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루노우치 일대를 반세기 넘게 지탱하던 100척(약 31m) 규제는 이미 풀렸고 그 자리를 고층 빌딩들이 채웠지만, 도쿄역에서 황거로 뻗어나가는 시각적 축만큼은 경관 가이드라인으로 남아 오늘의 스카이라인 안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규제는 사라졌어도 축은 남은 셈이다. 광장에 선 사람들은 그 축을 의식하지 못한 채 걷지만, 발밑의 길은 한 세기 전의 위계와 오늘의 보행이 겹쳐진 자리이기도 하다.
2014년부터 3년의 정비 기간을 거쳐 2017년 전면 개방된 마루노우치 역 앞 광장은 설계 목표를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차량을 걷어내고 보행을 우선하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 광장 내 벤치를 배치하고 잔디 구역을 조성해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른바 '체류 가능한 광장'을 지향한 셈이다.
그러나 광장의 설계가 바꾼 것은 공간의 물리적 조건이었지, 장소의 성격이 아니었다. 도쿄역은 하루 수십만 명이 오가는 것으로 추산되는 교통 결절점이다. 이 숫자는 역의 물리적 규모나 노선 수의 문제가 아니다. 도쿄역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이 장소는 출발점이거나 경유지다. 역을 나서는 순간, 다음 목적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광장은 그 이동의 표면 위에 놓인 전이 공간일 뿐, 설계가 아무리 체류를 유도해도 장소가 가진 목적성이 행동을 먼저 규정한다.
그렇다고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 정면을 프레임에 넣으려 위치를 조금씩 옮기는 관광객, 벤치에 앉아 잠시 대기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은 이 광장을 목적지로 삼은 소수의 예외적 행동자들이다. 이들의 존재가 광장을 체류 공간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것은 착시일뿐, 광장의 지배적 문법은 통과이고, 머무름은 그 흐름 사이에 끼어든 예외로 남는다.
자동차가 지워진 자리에 사람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설계가 결정하지 못했다. 광장은 여전히 통과하는 곳이며 한 세기 전 황실의 행차가 이 축 위를 지나갔듯, 오늘의 사람들도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건넌다. 형태는 복원되었고 위계는 사라졌지만, 장소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는 이제 마루노우치 일대에서 가장 낮은 건물이다. 사방을 둘러싼 유리 커튼월의 오피스 타워들 사이에서 붉은 벽돌의 2층짜리 건물은 도시의 스카이라인 안에서 유독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왜소한 건물이야말로 마루노우치 전체가 스스로를 가늠하는 좌표다. 도쿄역과 황거를 잇는 축이 경관 가이드라인으로 남았듯, 이 지역의 개발은 결국 이 붉은 벽돌 건물과의 거리와 방향 속에서 저마다의 높이를 정한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낮은 건물이, 가장 새롭고 가장 높은 건물들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 역설은 물리적 형태를 넘어 도시의 일상에도 스며든다. 마루노우치는 미쓰비시 계열의 오피스 타워들이 구획을 나눠 소유한 철저히 사적인 공간들의 집합이다. 각 빌딩은 저마다의 로비와 보안, 저마다의 임차인을 가지고 있어 서로 섞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누구의 소유도 아닌, 누구나 지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 역사와 그 앞 광장이다. 출근하는 회사원과 여행 가방을 끄는 관광객, 잠시 벤치에 앉은 사람과 사진을 찍으려 걸음을 멈춘 사람이 이곳에서만큼은 같은 자리를 공유한다. 사유화된 타워들 사이에 남은 이 한 뼘의 공공성이 마루노우치를 실제로 하나의 '동네'처럼 느끼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지점이다.
역사의 상징성은 이렇게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다. 야에스 쪽 출구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오히려 이 붉은 벽돌 건물이 '도쿄역'이라는 이미지 전체를 대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루노우치 일대의 재편은 이 건물의 복원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그 여파는 이 건물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축은 광장 너머로, 도로 너머로, 인접한 다른 건물들 안으로 계속 이어진다.
한 세기 전 지워졌던 것은 벽돌과 돔이었지만 오늘까지 남아 계속 묻고 있는 것은 그보다 오래된 질문이다. 사유화된 타워들이 구획을 나눠 가진 도시에서 공공성이란 결국 지워지고 남은 자리에 얹힌 예외일 뿐인걸까. 아니면 그 한 뼘의 자리로부터 다시 넓어질 수 있는 것일까.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가 마루노우치의 좌표로 남아 있는 동안 그 축이 가리키는 다음 장은 이미 인접한 건물들 안에서 쓰이고 있다.
글, 사진 | citevo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