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 빌딩
몇 번이나 길을 헤맨 끝에 겨우 인파를 뚫고 도쿄역을 빠져나왔다. 붉은 벽돌 건물을 잔디밭이 감사고 하얀 화강암으로 포장된 넓은 광장으로 나오니 온몸을 조이던 긴장이 차츰 풀린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크게 한숨 고르고 일대를 둘러봤다. 활기차고 분주한 동쪽의 야에스 일대와 달리 서쪽의 마루노우치 일대는 차분하면서 뉴욕 맨해튼 거리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에는 '백 척 규제'라는 개념이 있다. 1919년 제정된 시가지건축물법이 정한 기준으로 건축물의 최고 높이를 100척, 즉 약 31미터로 제한했다. 앞서 니혼바시 일대에서도 그랬듯, 마루노우치 일대 또한 높이 31m 규제 아래, 빌딩 하부가 넓게 가로 경관이 계획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진이 잦은 지형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과 도쿄역 서편에 위치한 천황이 거주하는 황거가 위치했기 때문이다. 황거의 시선 보다 건물이 높아서는 안된다는 명분 아래 백 척 규제는 수치로만 보면 단순하지만 도쿄 도심의 모습을 약 80년 가까이 묶어놓았다.
광장 주변으로 특히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다. 쌍둥이처럼 외관이 흡사한 두 채의 빌딩은 서로를 의식한 채 마주 서 있는데 바로 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 빌딩이다. 마루노우치 빌딩의 역사는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최초의 오피스 빌딩인 미쓰비시 1호관에 이어 지어진 구 마루노우치 빌딩은 지상 9층, 높이 약 31미터의 석조 건물로, 완공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그리고 같은 해 관동대지진에도 살아남았다. 이 사건이 일본 내진 설계 기준 도입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동양 제일의 빌딩'이라는 이름이 괜히 과장된 게 아니다.
그러나 2002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이 시행되면서 마루노우치 일대는 도시재생긴급정비지역으로 지정된다. 특례 용적률 제도가 적용되며 이때 백 척 규제가 풀렸다. 이와 동시에 상당수의 건물이 6층 일부의 옛 미관을 일부 보존하면서 초고층 개발의 길을 열었고 지금의 세련된 오피스 및 쇼핑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보존된 마루노우치 가로 일대는 독특한 형태를 낳았다. 일정한 선 아래, 고층 건물이 저층부 기단 위로 솟아 오른 형태를 취함으로써, 보행자가 거리에서 느끼는 위압감을 줄이고 도쿄역 광장과의 경관적 조화를 이룬다.
마루노우치 빌딩 또한 같은 해 지상 37층, 높이 약 180미터의 초고층 빌딩으로 재건축되었다. 화강암이나 테라코타 등 석재 느낌의 외장재를 사용해 과거의 경관을 유지하면서도 고층부에는 커튼월 시스템을 도입해 현대적인 인상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1923년 건설된 구 마루노우치빌딩은 뉴욕 맨해튼의 현대적인 빌딩들을 모델로 삼았다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도쿄 내에서도 가장 "뉴욕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된다.
바로 옆, 신마루노우치 빌딩은 그로부터 5년 뒤, 2007년에 준공되었다. 노먼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하이테크(High-Tech) 건축가로 꼽히는 마이클 홉킨스가 설계한 건물이다. 마루노우치빌딩이 고전적인 형태를 강조한다면 신마루노우치빌딩은 훨씬 더 중후하고 섬세한 디테일을 갖췄는데 특히 고층부 외벽에 수직 돌출된 기둥을 배치함으로써 입체적인 음영과 격자무늬를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두 건물은 외관의 형태는 닮아 있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서로 지향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마루노우치 빌딩 1층은 도쿄역 마루노우치 남쪽 출구와 이어지는 보행 동선의 연장선에 있다. 1층부터 5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거대 아트리움은 수직으로 뻗어 나가는 개방감을 선보인다.
유리 파사드를 통해 바깥 거리가 보이고, 거리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어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 이곳에서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상층부에는 고급 식당가와 비즈니스 관광이 결합된 집객 시설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했다. 건물의 중심인 5층 테라스로 올라가면 도쿄역 지붕 능선이 수평으로 펼쳐지고, 그 너머로 야에스 일대의 모습을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보게 배치했다.
거리와 역을 연결해 동선을 매개로 하는 마루노우치빌딩과 달리 신마루노우치빌딩은 조금 더 내부 지향적이다. 아치형 천장과 흑백 모노톤의 바닥재 등 고전적인 클래식한 서구적 미학과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정교한 연출을 따라 들어서면 높은 층고의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상업 공간이 배치되어 있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빛은 고품격 환대를 지향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내부 공간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간은 7층으로 '마루노우치 하우스'로 불리는 공간이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라운지로 꾸며서 개성 있는 상업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다양한 맛집과 함께 비즈니스 관광이 결합되어 방문객의 눈과 코를 사로잡는다. 외부 테라스와 연결되어 방문객은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도쿄역 광장과 반대편 황거의 전경을 눈높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수평적 구조를 이룬다.
정리하자면 마루노우치빌딩은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활력을 불어넣어 개방적인 공공공간이라면 신마루노우치빌딩은 세련된 커뮤니티와 여유로운 휴식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마루노우치 지구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서로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
두 빌딩은 단순한 오피스 타워가 아니다. 도쿄역 광장을 중심으로한 입체적 보행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로 마루노우치빌딩의 보이드 공간이 주는 개방감과 신마루노우치빌딩 테라스의 경관적 가치를 통해 상업 건축이 공공 영역을 어떻게 내부로 끌어들이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의 발자취다.
글, 사진 | citevo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