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비극과 희극의 경계선에서

byJoanne

딸 J의 시선



코엔 형제의 1996년 작 [파고](Farg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범죄’ 영화 중 하나이다. 납치 사건이 중심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수사극이나 범죄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명확한 장르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인데, 끔찍한 장면이 여럿 나오는 데다가 꽤 암울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내겐 영화 속의 ‘귀여운’ 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사실이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작품은 1980년대 후반,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자동차 대리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제리 룬데가드”(윌리엄 H. 메이시)가 가족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동차들을 담보로 32만 달러를 대출 받은 상태인 제리는 부유한 장인 “웨이드”(토니 덴멘)의 돈을 얻어 내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모색해 왔지만, 자신의 대리점에서 일하는 사위를 한심하게 보는 웨이드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이 여의치 않자 결국 아내 “진”(크리스틴 루드루드)을 납치하고 장인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일종의 사기극을 기획하게 된다. 작전 실행을 위해 대리점에서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으며 범죄 경력이 있는 “셉”을 통해 “칼”(스티브 부세미)과 “게어”(피터 스토메어)라는 잡범들을 소개 받은 제리는, 8만 불의 몸값을 반씩 나누고 대리점에서 빼돌린 차 한 대도 준다는 조건으로 이들을 납치범으로 ‘고용’한다. 진 혼자만 있는 시간에 집으로 들이닥친 그 둘은 그녀를 납치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서로 초면에 가까운 사이인 데다 생전 처음 손발을 맞춰 보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실수와 충돌을 일으킨다. 심지어 진을 차 트렁크에 가두고 은신처로 향하던 길에는 새 차에 번호판을 제대로 부착하지 않아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되고, 범행이 탄로나기 전 게어가 경찰관과 목격자 두 명을 총으로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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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살인 사건이 일어난 도시의 경찰서장인 “마지 군더슨”(프랜시스 맥도먼드)이 임신 7개월 차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한다. 뛰어난 수사관인 그녀는 사망한 경찰관이 교통 위반 자동차에 벌금을 매기려다 살해되었다는 정황과 근처 모텔에 대리점 자동차를 몰고 온 두 남자가 투숙했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칼과 게어에 대한 추격은 물론 제리가 일하고 있는 대리점의 탐문에까지 직접 나선다. 점점 복잡해지는 상황 중에도 제리는 웨이드에게 진이 납치되었음을 알리면서 그들이 백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말로 엄청난 금액의 몸값을 받아 내려 한다. 웨이드는 딸을 위해 돈을 준비하지만 본인이 직접 전달하겠다고 우기며 제리가 말릴 새도 없이 혼자 납치범들과의 교섭 장소로 향하는데, 제리와의 만남을 예상했다가 웨이드의 등장에 당황한 칼은 딸을 내놓지 않으면 돈도 주지 않겠다며 버티는 웨이드와 말다툼을 벌이다 울컥하는 성질로 웨이드의 가슴에 총을 발사한다. 쓰러진 웨이드도 칼의 얼굴에 총을 쏴 턱에 상해를 입히지만 눈이 돌아간 칼이 총을 난사하면서 결국 사망하게 된다. 뒤늦게 웨이드를 따라왔던 제리는 끔찍한 현장을 보자 기겁해 장인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고, 이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다시 대리점을 찾은 마지에게 감정 조절을 못하고 화를 내다가 그대로 도주해 버리고 만다.


한편 돈가방을 열어 본 칼은 약속한 8만 달러가 아닌 백만 달러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기뻐한다. 게어에게 비밀로 하기 위해 나머지 돈을 눈밭에 대충 파묻은 칼이 8만 달러만 가지고 은신처로 돌아가지만, 진은 “시끄럽다”는 이유에서 게어에게 살해된 상황으로 모든 것이 이미 통제를 벗어난 후다. 칼은 게어에게 4만 달러를 건네며 제리에게서 받은 새 자동차는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통보하는데, 게어는 그렇다면 그 차의 반값에 해당하는 돈도 주어야 옳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칼은 화를 내며 게어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 버리지만, 곧 조용히 쫓아온 게어에 의해 그 자신도 살해된다. 같은 시각, 제리의 대리점에서 빼돌려진 범인들의 자동차를 추적하던 마지가 드디어 이들의 은신처를 찾아내고, 도망치는 게어를 쫓아 눈밭에서 추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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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는 여러 흥행작을 내놓은 코엔 형제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특히 성공한 작품으로, 2014년에는 TV 시리즈로 제작되기까지 했었다. 보통의 납치극이나 범죄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구사하는 미네소타 억양(좋게 말하면 정겹고 솔직히 말하면 촌스러운) 역시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 등장인물들의 이 귀여운 억양과 작품 전반에 깔린 잔인함의 대비가 주는 괴리감과 기괴(?)함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영화에서 수사를 지휘하며 관객들의 윤리적 기준(moral compass)이 되어 주는 경찰서장이 ‘만삭의 임산부’라는 설정 또한 무척 신기하고 기발하게 느껴졌는데, ‘임신 상태’의 여성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그전까지 본 적이 없었던 데다, 임신이라는 상태가 약간의 신체적 불편함 외엔 인물의 서사와 능력,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서술 방식이 문화적 선입견을 부수는 무언가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가 “마지”라는 인물을 통해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의도했다기보다 장르의 틀을 뒤집고 뒤틀며 영화 속에 장난 섞인 혼돈(chaos)을 집어넣으려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배역이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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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Minnesota Nice”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미네소타 주 사람들은 착하다”는 뜻을 압축한 이 문장은 실제로 그 지역에서 자랑스럽게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미네소타 주지사 팀 월즈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이 표현이 다시 한 번 회자되기도 했었고 말이다. 어찌 보면 선입견에 가까운 -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할지라도 - 문장이지만 실제로도 난민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거나 2000년대 초반 독감 예방 백신 부족으로 미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많은 미네소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예방 접종을 양보하는 등 여러 미담을 보유하고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로스쿨 2학년 봄 방학 동안 봉사활동을 위해 다른 학생들과 미네소타 주에 일주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는데, 시골 쪽으로 갈수록 영화 [파고]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억양이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며 무척 재미있게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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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Minnesota Nice”에는 또 다른 해석이 있는데, 미국 중서부 사람들이 ‘착하다’기보다 직접적 충돌과 다툼을 피하느라 화를 참는 것일 뿐 실제로는 수동적 공격성(passive aggression)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겉으로 보기엔 친절하고 정중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대신 ‘겉치레’에 신경을 쓰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어떤 의미로든 튀거나 특별한 사람을 억누르려는 노력의 일부라는 시각으로, 사실상 이 작품에 내재된 이중성을 잘 요약한 표현이기도 하다. 나긋나긋 얌전한 듯 보이는 얼굴로 자신의 아내에게 해를 입힐 계획을 꾸미는 제리나, 쾌활하고 발랄한 동료들로부터 사건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를 들으며 표정 관리를 하는 마지에게서 느껴지는 대비는 특히 섬뜩하고 말이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살인 사건이 미네소타의 추운 겨울,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일어난다는 설정 또한 의미심장하다.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눈 위로 번지는 피는 더욱 잔인하고 끔찍하게만 보이고, 그 위에 내린 눈은 참상을 덮어 ‘가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황을 ‘보존’하기도 한다. 겉만 순수할 뿐 속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위선과 이기심의 기저엔 무수한 상처와 잔인함이 그 어떤 해결도 해소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파묻혀 있을 것처럼 말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을 정의할 때 “블랙 코미디”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설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어두운 듯 발랄하고 장난스러운 소동 속에 날카로운 비관이 숨겨져 있는 이들 특유의 분위기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데에는 그들이 아이러니를, 정확하게는 모순(contradiction)을 활용하는 능력이 큰 몫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작품 속에서 희극과 비극의 균형을 팽팽하게 이뤄 내며 예상 밖의 전개로 관객들을 계속 ‘당황’시키는 과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 바꾸어 말하면 ‘인류’와 ‘인생’ 자체에 내재하는 - 우스꽝스러움(ridiculousness)과 터무니없음(absurdity)을 조명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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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파고]는 의도치 않게라도 악행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즉 ‘말이 되게’ 하는) 의도와 서사를 부여하는 많은 영화들과 달리 악과 범죄의 우스움과 한심함에 집중하여 힘과 설득력을 얻는다. 칼과 게어, 제리 같은 영화 속 ‘악인’들은 복수심이나 정의감 등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행동하는 대신 늘 자신의 ‘욕망’만을 따른다. 그나마 제리는 빚을 갚고 싶어 한다거나 장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는(혹은 그의 영향권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식의 조금 더 ‘의미 있는’ 이유가 추론되는 선에서 시작하지만, 종국엔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백만 달러)을 얻어 내려 들면서 눈먼 욕심의 숙주로 전락하고 만다. 칼과 게어는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영화는 이 둘에게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 데다가 이들은 돈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합리적인 원칙까지 무시해 버리고 자신의 기분과 순간의 욕심에 따라 무바카라임한 행동을 일삼는다.


원래부터 엉망이던 제리의 납치 계획은 이들 각자의 이기적 선택과 행동으로 점점 더 피해자를 늘리며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내부적 갈등으로 위기를 맞는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만을 따르는 ‘악’과 ‘이기심’은 결코 치밀함도, 결속력도 바랄 수 없이 근본부터 ‘부족함’으로 이루어진 것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도주했던 제리가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 살해 당한 칼의 시신이 목재 분쇄기(!)로 처리되는 전설적 장면, 그렇게나 쉽게 타인을 해치던 게어가 막상 자신을 쫓아온 마지를 보자 자신의 피해자들이 그랬듯 눈밭으로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초라함을 넘어 ‘추함’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아무리 포장하고 멋진 설명을 곁들이려 한들 어차피 악과 이기심은 그 토대가 되는 ‘한심스러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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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파고]는 인생과 인간이 가진 선천적 ‘우스꽝스러움’을 전체적으로 경멸하고 비웃으려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 속 악역들이 ‘이상’하고 ‘우스운’ 만큼이나 영화 속에서 정신적 주체가 되는 마지 또한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위험한 살인자를 쫓는 일에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이는 그녀의 상태(이 대목이 임신부의 몸을 비하하거나 희화하려는 뜻은 분명히 아니다), 잔인한 사건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동료들과의 평안한 대화 내용, 오랜만에 함께한 자리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당황시키는 옛 동창과의 만남 등 영화 내내 보여지는 마지의 삶 또한 한 인간이 인생을 살며 피할 수 없는 우습고 황당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엄청난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온 그녀에게 남편이 건네는 말이 위로나 칭찬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그림은 3센트 짜리 우표의 도안으로 선정되고 친구의 그림은 1급 우표의 도안으로 뽑혔다는 불평이라는 것 또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어이없는 짐을 지고 있는 것인지 시사하는 장면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마지는 화를 내거나 힘들어하는 대신 우표 값이 오를 때마다 가장 많이 소용될 - 가격차를 메우기 위해 - 우표는 3센트짜리일 것이라며 남편을 위로하고, 순하고 다정한 그녀의 남편은 다시 기분이 풀려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 나눈다. 사랑과 이해, 이타심의 기반 위에서 삶의 우스꽝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은 도리어 많은 일들을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희극과 비극, 중요성과 무의미함, 한심함과 고귀함이 공존하는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상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큰 시험이자 축복의 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숙제처럼 놓인 앞날 가운데 헛소동과 황당함은 계속해서 이어지겠지만, 삶을 살아 낸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라는 모순을 인정하며 웃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적어도 우리가 ‘한심하게’ 사는 일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엄마 C의 시선



영화 “파고(Fargo)”는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별칭을 가진 코엔 형제(Coen Brothers)가 연출을 맡아 미국과 영국의 공동 제작으로 1996년 발표되었던 작품입니다. 나름의 독특한 색채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코엔 형제”는 글자 그대로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함께하는 조엘 코엔(Joel Daniel Coen)과 에단 코엔(Ethan Jesse Coen) 형제를 일컫는 명칭으로, “파고”를 포함해 “바톤 핑크(Barton Pink),”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같은 작품들(1991, 2001, 2013년 작)이 황금종려상, 감독상, 심사위원대상 등을 수상하며 칸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감독이라는 명예로운 기록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화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처럼 – 저희도 조만간 다루게 될 – 잘 알려진 작품의 연출가라고 설명해야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미국 개봉의 다음 해인 1997년 공개되었던 이 작품은, 98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코엔 형제 특유의 인상적인 영상과 강렬한 메시지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면서, 제 49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작품상을 포함한 총 7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던 제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각본상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더욱이 작품의 문화/역사/미학적 중요성을 인정 받아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록부(National Film Registry)의 영구 보존 영화로 선정(2006년)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영화연구소(AFI: American Film Institute)가 선정하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100대 미국 영화” 중 하나로 지정(1998년)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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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파고”는 작품의 내용을 견인할 중심 사건이 발생하는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주의 대표 도시(문화, 경제, 상업의 중심지) 이름이지만 실제 영화의 주요 무대는 인접 지역인 미네소타(Minnesota) 주의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제리 룬데가드(Jerry Lundegaard)의 집과 온라인 게임 등이 모두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한편 아내를 납치하고 보상금을 챙기기 위해 고용한 범죄자들을 그가 만난 장소는 파고였던 것이지요. 고용된 두 남성이 파고에서 미니애폴리스까지의 상당 거리를 가는 동안 하룻밤 묵게 되는 – 두 도시의 중간쯤에 위치한 – 경유지 브레이너드(Brainerd)에서 벌인 일들이 제리의 범행이 발각되는 단서와 시초가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할 내용의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로도 불리기는 하지만 – 실제로도 코엔 형제의 여느 작품들처럼 ‘뒤틀고 비꼬는’ 코미디적 요소들이 상당수 존재하기는 하지만 – 지난 회에 포스팅한 ”지구를 지켜라!”의 경우와 같이 ‘코미디’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 ‘과한’ 범죄 스릴러라고 정의함이 보다 적절할 것입니다.




첫 시작 화면부터 “이 영화의 내용은 실화(a true story)이다”라는 굵은 글씨와 함께 “1987년 미네소타 주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며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을 썼다”는 자막이 등장하는 이 영화가 그 ‘실제 사건’을 “소박한 살인 이야기(homespun murder story)”라는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상 이것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코엔 형제 특유의 장치 중 하나로 작품에 사용된 기법일 뿐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이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허구(fictitious)이다”라는 자막이 다시 등장하지만 이것이 엔딩 크레딧에서도 맨 끝, 즉 마지막의 마지막(보통의 관객들은 이미 자리에서 다 떠났을 시점)이기에 미국 기자들이 영화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려 FBI에 직접 문의하기까지 했고 그런 사건이 없다는 답변을 듣자 비난성 기사를 싣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영화의 내용을 실화로 믿은 일본 여성이 그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도되었던 사건(2001년 발생)을 각색하여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Kumiko, the Treasure Hunter)”라는 제목의 영화가 다시 미국에서 제작, 발표(2014년)되기도 했고 말이지요.


장인 소유인 미니애폴리스의 자동차 대리점(올즈모빌: Oldsmobile)에서 판매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제리(Jerry)”는 어수룩해 보이는 외모나 말투와 달리 돈 문제로 ‘큰 사고’를 친 전적이 있는 듯 존재하지도 않는 자동차들을 담보 삼아 은행에서 32만 불이라는 거액의 부정 대출을 받습니다. 대출금을 상환할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는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정비공 “셉 프라우드풋(Shep Proudfoot)”의 도움으로 ‘기막힌’ 일을 꾸미게 되는데, 범죄 전력이 있는 가석방 중의 그가 소개해 준 “칼 쇼월터(Carl Showalter)”와 “게어 그림스러드(Gaear Grimsrud)”를 고용해 자신의 아내를 납치한 후 부유한 장인으로부터 몸값을 받아 낸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지요. 셉에게서 소개 받은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웃 주에 위치한 파고까지 간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아내 “진(Jean)”의 납치를 의뢰하면서 장인 “웨이드 구스타프손(Wade Gustafson)”으로부터 받아 낼 몸값 8만 불의 절반과 범행에 사용할 신차 한 대(자신의 대리점에 입고된 새 차 가운데 하나)를 제공하기로 약속합니다.


장인 웨이드에게 건의한 다른 투자 제안이 잘 될 듯한 조짐이 보이자 제리는 급히 납치 의뢰를 취소하려 하지만,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칼과 게어는 계획대로 혼자 집에 있던 제리의 아내 진을 납치합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납치된 것을 확인한 제리는 곧바로 장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이때부터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엇나가기 시작하지요. 늦은 밤 외진 국도에서 납치범들이 타고 가던 – 제리가 제공한 – 신차 “시에라(Ciera)”에 번호판이 없는 것을 발견한 경찰이 검문을 시도하자 다짜고짜 경찰을 총으로 쏴 살해한 게어가, 하필 그때 반대편 도로를 지나다 경찰의 시체를 옮기고 있던 칼을 목격한 차량을 추격해선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까지 살해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납치범들이 100만 불을 요구했으며 다른 사람 아닌 자기를 통해서만 거래할 것을 통보했다고 웨이드에게 거짓으로 전한 제리가 경찰에게 알려야 한다는 장인을 강하게 만류하지만 - 경찰이 개입하면 진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핑계로 - 다음날 3구의 시체가 발견된 현장엔 브레이너드 지역의 경찰서장 “마지 군더슨(Marge Gunderson)”이 아침부터 출동해 수사를 개시합니다. 거동이 불편할 만삭의 몸임에도 뛰어난 감각과 추리력으로 수사를 지휘하던 그녀는 사망한 경찰관이 대리점 번호판을 단 자동차에 벌금을 부과하려다 살해되었다는 것과 그 자동차를 몰고 온 두 남자가 두 명의 접대 여성과 근처 모텔에 투숙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요. 그 두 접대부로부터 각각 “웃기게 생긴 남자(칼)”와 “말보로 맨(게어)”으로 묘사된 남성들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한 마지는 시에라 자동차의 출처일 판매 대리점으로도 직접 찾아가는데, 불시에 닥친 마지의 방문에 당황한 제리는 자신의 대리점에 도난 차량이 없는지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도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납치범 칼이 제리에게 전화해 뜻하지 않게 3명이나 더 죽였으니 몸값 8만 불 전액을 자신들이 받아야겠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그 금액을 100만 불로 알고 있는 - 그리고 사위를 못미더워하는 - 웨이드 또한 자신이 직접 돈을 전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납치범들과의 접촉을 위해 혼자 거래 현장으로 나갑니다. 약속된 장소에서 제리를 기다리고 있던 칼은 안 그래도 웬 낯선 노인이 나타나 당황스럽던 차에 딸을 먼저 내놓지 않으면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웨이드에게 화가 나 총격을 가하고, 쓰러진 웨이드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자신의 뺨에 상처를 입히자 무차별 난사로 웨이드를 살해한 뒤 차를 몰고 나오다 마주친 주차장 직원까지 사살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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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나와 열어 본 가방에서 100만 불이라는 거금을 발견한 칼은 게어와 나눌 8만 불만 남기고 나머지 돈을 황량한 눈밭에 묻은 채 납치한 진이 감금되어 있는 은신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혼자 남아 진을 지키던 게어가 시끄럽게 굴어 ‘성가시다’는 이유로 그녀를 살해하고 난 후였는데, 신차인 시에라 가격을 양분하자는 자신의 말에 “총까지 맞으며 고생한 건 나”라며 거절하는 칼을 뒤에서 가격한 게어는 결국 그마저 살해하고 맙니다. 다음날 아침 태연한 척 출근했던 제리에게 다시 찾아온 마지가 시에라 차량이 등록된 차였음을 지적하며 분실된 차가 정말 없는지 추궁하자, 확인해 보겠다고 짜증스럽게 대답하며 사무실을 나간 제리는 자기 차를 타고 그대로 도망쳐 버리지요. 이 모든 정황으로 경위를 짐작한 마지가 그들의 은신처를 찾아내어 그곳에서 칼의 시신을 ‘처리'하고 있던 게어를 체포하는 데 성공하고 모텔에 숨어 있던 제리 또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92만 불(100만 불 가운데 8만 불만 제외한)의 행방이 묘연한 채 ‘파란만장’한 사건과 영화는 그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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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영화나 소설 등에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특히 자주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곤 하는데,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동안 그 개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미스터리 작가 브래드버리(Ray D. Bradbury)의 단편소설(1952년 작)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에서 처음 쓰였다는 이 용어는 “과거의 나비 한 마리의 죽음이 미래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바꾼다”는 설정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으로, 아주 작은 사건이나 사소한 변화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가리킬 때 사용되곤 하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어휘가 계속 생각났던 이유는 아마도 제리가 애초 계획할 때는 별다른 위험성을 예측하지 않았을 - 누가 아내를 잠시만 ‘데리고' 있어 주면 돈 많은 장인의 재산 일부를 챙겨 자신의 금전적 난관을 쉽게 돌파할 수 있으리라 여긴 - 일이 끝내 일곱 명(아내, 장인, 경찰, 두 행인, 주차장 직원, 납치범 칼)의 생명을 앗아간 끔찍한 사건으로 증폭되고 말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칼의 죽음이야 그 자신의 탐욕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라 치더라도 그 외의 다른 여섯 명은 아무 잘못 없이, 더구나 너무도 어이없이 하나뿐인 자신의 귀한 생명을 잃고 만 것이니까요.


물론 ‘실화가 아닌' 영화의 내용이 이런 류의 희비극(喜悲劇: Tragicomedy) 다루기를 즐기는 코엔 형제가 창작해 낸 픽션이기는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곤 합니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란의 공습과 함께 일으킨 - 분명 ‘별 생각 없이’ 시작했을 -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6개월 가까이 이어지면서 세계 곳곳의 수많은 서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하고 있지요. 특히 약소국의 소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한국 역시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폐업하는 요식업자, 자재 가격 폭등으로 아파트 등의 건축이 중단되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건설 노동자(이사 계획과 자금 문제가 엉켜 난관에 부딪힌 이들은 둘째 치고)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거나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는 보도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파고”의 사례, 또는 위에서 말한 이란 전쟁 등의 실례를 보더라도 “나비효과”의 어마어마한 파장이 의도치 않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을지는 모르나 그저 어떤 ‘우연'에 의해, 혹은 단지 ‘운이 나빠서' 일어나는 파급 효과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눈이 가려진 채 납치된 진이 맨발로 눈밭 위에서 도망치려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즐기듯 '구경'하는 인성의 칼과 게어, 특히 뜻밖의 횡재를 혼자 차지하려 몰래 숨겨 두고도 ‘푼돈' 나누기에 인색하다 목숨까지 잃고 마는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칼이나 불가피한 상황이 아님에도 사람 죽이는 일을 일상처럼 반복하는 게어 같은 자들을 그런 계획에 끌어 들인 것은, 초래될 수 있을 끔찍한 결과에 대한 예측이 애초부터 생략된 무바카라임한 행위였음이 분명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뿌린 대로 거두어진다(You reap what you sow)”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는 진리이자 성경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교훈(욥 4:8; 잠 11:18; 22:8; 고후 9:6; 갈 6:7-8; 약 3:18)이기도 한바, 그럼에도 공평치 않은 점이라면 그런 “원인-결과의 법칙”이 잘못된 일을 별 생각없이 시작한 본인만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타인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나비 효과”이든 ”도미노 효과(Domino Effect)”나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 등의 무엇이든 그것이 꼭 나쁜 쪽으로 파급 효과를 미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지요. 시내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운전기사의 말을 거부하다 체포되었던 로사 파크스(Rosa Parks)가 자신의 ‘작은' 신념에 입각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불을 지피며 ”현대 민권 운동의 어머니”라는 ‘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듯,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작고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 행동들이 후에 어떻게 크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보다 보니, 허허벌판인 눈밭에 칼이 숨겨 둔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 눈 녹는 새봄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부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선량한 이에 의해 발견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웨이드 혼자 누렸을 때보다 훨씬 의미 있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의 귀한 목숨이 그저 헛된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이 일과 ‘전혀 관계없던’ 사람들에게도 축복과 은혜가 되는 “파문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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