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 몇 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혀야 할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 [살인의 추억]일 것이다. 어렸을 적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느꼈던 강렬한 인상이 여전히 가시지 않아서인지 [기생충]의 감독으로만 봉준호를 알고 있는 이곳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 동료들에게 내가 꼭 추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개봉 당시 미제 사건이었으나 몇 년 전 범인이 밝혀지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명명되기도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는다. 1986년 가을 경기도 화성에서 성폭행 당한 뒤 끔찍하게 살해된 젊은 여성의 시신이 처음 발견된 뒤 몇 개월만에 비슷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단순 범죄가 아닌 "연쇄살인"으로서 사건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던 이 복잡한 사건을 지역 형사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경찰의 판단으로, 그 지역 형사인 "박두만"(송강호)과 동료들은 물론 서울에서 내려온 나름의 ‘엘리트’ 형사 "서태윤"(김상경) 또한 사건 해결을 위해 꾸려진 특별수사본부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본인의 ‘촉’과 육감에 기대어 사건을 해결해 온 박두만과 서류 검토나 법의학적 지식을 통해 ‘증거’에 기초하는 수사를 중시해 온 서태윤은 이런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처음부터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한다. 박두만과 동료들은 피해자 여성 중 한 명을 쫓아다녔다는 "백광호"(박노식)를 잡아들여 심한 구타에 의한 ‘자백’을 받아 내지만 곧 손도 불편한 그가 물리적으로 범인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풀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이후 범행 현장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다 체포된 남성 "조병순"(류태호)에게서 고문과 다를 바 없는 가혹한 ‘조사’ 끝에 얻어 낸 자백 역시 이를 신뢰하지 않는 서태윤에 의해 증거 가치가 반박된다. 분노한 박두만이 서태윤과 몸싸움을 벌이며 둘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찰나, 다섯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 당시 취조실에 갇혀 있던 조병순의 결백이 자연스레 입증된다.
이후 마지못해 휴전에 돌입한 박두만과 서태윤은 함께 수사를 이어 가다 "박현규"(박해일)라는 세 번째 용의자를 찾아내게 된다. 지금까지의 경우와 달리 범행의 정황과 피해자(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이 일치하는 듯 보이는 그를 서태윤은 범인으로 확신하지만 용의자 박현규는 형사들의 압박과 가혹 행위에도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박현규가 풀려난 뒤 또다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범행의 피해자가 자신과도 개인적 인연이 있던 여학생임을 알게 된 서태윤은 이성을 잃은 채 박현규를 찾아 나선다.
재기발랄한 유머와 엽기적일 정도의 기괴함을 적절히 섞는 것에는 봉준호 감독만 한 전문가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 작품 안에서 감독 특유의 감성은 불편할 정도로 도드라져 보인다. 시신을 비추던 카메라의 포커스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조각들로 전환되는 장면이나 형사들의 가혹 행위가 벌어지는 ‘취조실’의 녹슨 벽과 벗겨진 페인트, 비 온 뒤의 꿉꿉함과도 닮아 있는 영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는,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재치와 밝음에도 불구하고 ‘살인’이라는 끔찍한 ‘소재’가 관객들의 의식 안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쉼 없이 극의 중심을 잡아 준다.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소재에 걸맞게 이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테마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 즉 범죄라는 개인적, 혹은 ‘사적’(private) 폭력은 물론 국가와 공권력이 슬롯와 시민을 향해 분출하는 폭력 또한 영화의 관심 대상 중 하나로, 박두만과 동료 형사들이 이끌어 가는 수사 방식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진실’보다는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다시 말해 문제를 적당히 ‘덮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에 익숙한 그들은 발달장애를 가진 슬롯적 약자 백광호는 물론 주위의 평판이 좋은 두 번째 용의자 조병순까지 두들겨패고 고문하며 억지로라도 범인을 ‘만들어’ 내려 한다. 물론 조병순도 나름의 문제가 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결백한 사람들을 억지로 꺾고 굴복시키는 행위는 힘 있는 자에 의해 ‘진실’조차 뜻대로 주물러지고 오염되던 당시의 아픔과 폭력성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영화의 중반부, 풀려난 백광호가 자신에게 가장 잔인하게 굴던 형사 "조용구"(김뢰하)의 또 다른 폭력 장면을 목격한 뒤 각목을 휘둘러 그의 다리에 못이 박히게 하는 장면은 복수의 통쾌함보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슬픈 사이클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살인 사건의 주요 목격자였던 백광호가 형사들(그리고 슬롯)로부터 당해 온 폭력의 트라우마 때문에 결정적 증언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공권력과 주류 슬롯의 기득권이 누군가를 짓밟고 억누르는 폭력적 권력에 집착할 때 공동체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조용구가 결국 파상풍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 대목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의 주체는 결국 스스로 몰락하게 되리라는 섬찟한 경고로 읽히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사적’ 폭력, 더 정확하게는 여성들을 향한 범인의 폭력 또한 구조적/슬롯적 폭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영화는 이 끔찍한 사건 속에서 경찰이 얼마나 ‘여성’이라는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는지 세세하게 들추어 내는데, 이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살해되는 현상 외에도 작품의 서술상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 또 의도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을 통해 제시된다. 특수본의 구성원 중 유일한 여성인 "권귀옥"(고서희) 형사는 회의에도 제대로 끼지 못한 채 커피 타 주는 잔심부름 정도나 하는 역할로 격하되어 있지만,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비 내리는 밤 살인이 일어났다는 일정한 공식을 가장 먼저 짚어 냈을 뿐 아니라 유일한 생존자인 여성을 설득해 진술을 받아 내며 자신의 유능함과 중요성을 스스로 증명한다. 박두만의 연인 "곽설영"(전미선)이 사람들에게서 들은 소문을 두만에게 전해 주는 것과 범인의 얼굴을 끝까지 보지 않아 목숨을 지킨 피해자가 두려움과 후유증을 이기고 결정적 증언을 하는 일 등, 영화 속 여성들은 불합리하고 잔인한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수사에 기여하면서도 결국은 ‘범인을 쫓는 형사’라는 작품의 서사적 구조 언저리에만 머물고 마는 것이다.
이 의도적(이라고 생각되는) 배제(exclusion)는 대부분 ‘남자’이자 슬롯적 강자인 형사들, 다시 말해 이 범죄의 ‘직접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들의 사건 접근 방식을 설명하는 데에도 일조하는 면이 있다. 앞서 말했듯 박두만과 동료들은 실제 범인을 찾는 일, 그래서 더 이상의 피해 여성이 생기는 일을 막는 것에는 큰 관심 없이 사건을 어떻게든 ‘종료’하는 데에만 힘을 쏟는다. 그들보다 나은 직업 의식을 가진 듯 보이던 서태윤 역시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이 사건에 올바른 관심을 두지 않는데, 박두만과 동료 형사들은 적어도 용의자를 "나쁜 놈 같다"는 억지스럽지만 강하고 '뜨거운' 감정으로 다루고 있다면, 서태윤은 차가운 이성과 논리를 내세우며 사건을 마치 퍼즐 풀 듯 학리적(academic) 사안으로 대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이성적인 방향으로 수사의 중심을 잡는 박두만과 대비되며 서태윤이 점점 더 감정적으로 사건에 대응하게 된다는 설정도 - 비판적으로 해석하면 - 범인을 잡아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의감보다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자존심이 상해 반드시 정답을 찾으려는 해결 욕구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재미있게도 – 그리고 약간 슬프게도 – 점점 감정적으로 변하던 서태윤이 평소의 자제력을 완전히 잃고 폭발하는 장면은 자신이 알던 어린 여학생이 끔찍한 일을 당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나서 등장한다. 그제서야 이 사건들은 불쌍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 자신이 수사해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맞닿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또 단순히 내 ‘일’(job)이 아닌 ‘내 일’(personal affairs)이 되는 것이다. 박현규를 잡아 와 그동안 그렇게나 경멸하던 다른 형사들처럼 심한 구타를 가하는 서태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을 갖게 된다. 약자를 향한 폭력이 ‘자신의 일’이 되어 버리자 한순간에 신념을 저버릴 정도로 분노하고 흥분하는 그에 대한 한심함(혹은 안쓰러움)과 동시에 어찌 되었건 약자에게 행해진 잔인한 폭력에 대항하는 열정과 노력에 대한 약간의 고마움도 들고. 자신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일에 특별히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당연한 태도라고 수긍하게도 되지만 자신과 약자 사이에 개인적 연결점이 없는 상황에서도 슬롯가 똑같이 분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함께 갖게 된다. 약자와 연대하는 슬롯를 만든다는 것은 이토록 복잡하고 ‘피곤한’ 일이다.
이춘재라는 진범이 밝혀진 이후 다시 시청한 [살인의 추억]은 조금 더 씁쓸하고도 쓸쓸했다. 범인의 정체에 대한 모색보다 ‘수사’에, 수사에 임한 형사들의 입장에 더 집중하는 범죄 ‘스릴러’로 영화를 이해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실제 사건을 다룬 논픽션 '트루 크라임(true crime)'장르에 더 가까운 시선으로 작품을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전설적’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나 "조디악 킬러"(Zodiac Killer; 이 사건을 다룬 2007년 작 [조디악] 도 상당히 뛰어난 영화다)처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마치 '신비한 순수악'인 양 낭만화(romanticize)까지 되는 대신 역겹고 한심한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그런 만큼 이제는 폭력의 주체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보다 폭력에 짓밟힌 사람들의 서사와 고통을 우선시할 때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연극의 제목 [날 보러 와요]가 당시엔 범인을 향한 메시지였다면, 앞으로는 악인에게 해악을 입은 약자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추모해 주길 바라는 부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제목에 담긴 어떤 소망처럼 약자를 향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공권력과 슬롯의 폭력이 언젠가는 그저 먼 추억처럼 과거로 남겨지기를, 수많은 진실들이 빛 아래 밝혀지기를 바란다.
엄마 C의 시선
2003년 4월 개봉작인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은 김광림의 희곡(1996년 작)으로 공연되던 “날 보러 와요”라는 제목의 연극을 영화화한, 그리고 당시 미제(未濟)로 남겨졌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극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연출가라고 할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2000년 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 3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비평가들에게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전작 “플란다스의 개”가 당시 관객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주제와 시도들로 흥행에 참패하며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슬픈' 타이틀의 비주류 작품으로 남게 된 것과 달리, 두 번째 작품인 “살인의 추억”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물론 평단의 찬사도 함께 누리면서 감독 자신의 대표작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영예로운 칭호까지 얻게 되었지요.
첫 사건 발생 33년만인 2019년 진범이 밝혀지기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줄곧 불려 왔으나 지역 혐오를 유발하는 명칭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던 중 범인이 밝혀지면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명칭이 변경된 희대의 살인극을 다룬 이 영화는, 극도의 사실감과 정교한 묘사력(디테일)으로 감독에게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을 뿐 아니라 봉 감독의 수많은 ‘광팬’들을 국내외에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별점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평론가 이동진으로부터 별 5개를 받은 이 작품이 국내에서 수상한 영화상의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이기에, 뉴욕 타임스(NYT)에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선”에 포함되었음과 미국 일간지 이그재미너(Examiner)의 2008년 선정 “비(非)할리우드 공포영화 톱 10”에서 5위 점유, 2018년 한겨레가 지정한 “한국영화 30년을 대표하는 30편” 목록 중 1위, 그리고 2019년 스포츠동아에서 주관한 “영화인·전문가 100명이 뽑은 한국 영화 100년사 최고의 영화”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 등으로 압도적 호평의 설명을 대신해야 할 듯합니다.
1986년 9월 성폭행 후 무참히 살해 당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경기도 화성에서 이후에도 비슷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적 수준으로 위기 의식이 팽배합니다. 사건 발생 지역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는 반장인 “구희봉”을 주축으로, ‘촉’과 ‘감,’ ‘인상’ 등만으로도 쉽게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역 토박이 “박두만” 형사와 그의 심복 격인 “조용구” 형사, 그리고 서울 시경에서 자원해 내려온 “서태윤” 형사를 중심 인력으로 꾸려 본격적 수사에 돌입하지요. 동네 불량배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이어 가던 박두만은 연인 관계인(“주사 아줌마”로 불리며 인근 주민들과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기에 박두만에게 여러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가능한) “곽설영”으로부터 살해 당한 여성을 쫓아다니곤 했다는 “백광호”의 소문을 전해 들은 후 그를 범인으로 지목해 현장검증까지 실시합니다. 그러다 발달장애인인 그를 구타해서 얻어 낸 자백만으로 신청한 체포 영장이 기각되고 부실 수사에 대한 바카라임을 물어 구희봉 반장이 파면된 뒤, 후임자인 “신동철” 반장의 지휘 아래 그간 ‘텃세’ 때문에 의견 개진에 어려움을 겪던 서태윤 형사의 활약이 새롭게 펼쳐지며 수사는 활기를 띄기 시작하지요.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증거물 분석에 열중해 온 서 형사의 치밀함 덕분에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고 혼자 길을 가던 여성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건들의 공통점이 드러나자 신임 반장은 수사본부 소속 여경인 “권귀옥”을 ‘미끼’ 삼아 -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혀 혼자 밤길을 걷게 해서 - 함정 수사를 벌이려 하지만 그날 밤 형사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실의에 빠졌던 수사본부는 한 남성이 비 오는 날마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같은 노래(가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신청했고 그 노래가 나오는 날 매번 살인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낸 권귀옥 경사의 명민한 분석에 힘입어 다행히도 범인 검거의 실마리를 찾는 듯 했으나, 방송국의 협조로 소재 파악과 체포에 성공한, 엽서를 보낸 당사자이자 사건 지역 인근 공장 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남성 “박현규”의 유전자가 미국 연구 기관에 보내져 실시된 검사 결과 범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다시 수사 난조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최초 피해자 “이향숙”의 살인범으로 지목되었던 – 지능이 정상인보다 낮고 얼굴에 화상도 심해 주위의 놀림감이 되곤 하던 – 백광호가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기술할 수 있었던 것은 범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목격자여서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박두만과 서태윤은 그의 진술을 듣기 위해 백광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깃집으로 찾아가는데, 먼저 와서 술을 마시고 있던 과격한 성격의 조용구가 경찰을 비난하는 대학생 손님들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가하면서 가게 안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됩니다. 뒤늦게 가게에 돌아와 이 모습을 본 백광호가 과거 자신을 심하게 구타한 조용구 형사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 때문인지 부러진 나무 의자를 들어 그를 향해 휘두르다 나무에 붙어 있던 못이 조용구의 다리에 박히는 일도 벌어지지요. 놀라고 당황해서 도망치는 백광호를 박두만과 서태윤이 따라가 심문하지만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철도 위로 올라갔던 백광호가 만류하려던 박두만 형사의 눈앞에서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합니다.
사건 발생일들의 알리바이가 불확실하다는 것과 첫 사건 발생이 그의 전입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이면서 유일한 생존자인 – 범인의 얼굴을 애써 보지 않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 여성이 기억하는 단 하나의 단서(“손이 무척 부드럽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박두만과 서태윤이 박현규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음에도 유전자가 다르다는 소견 때문에 박현규는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풀려나게 됩니다. 주점에 들어간 박현규를 감시하다 잠깐 방심한 사이 놓쳐 버린 서태윤 형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여중생이 그날 밤 살해되자 그에게 총까지 겨누며 자백을 강요할 만큼 이성을 잃고, 다리에 녹슨 못이 박혔던 조용구 형사는 파상풍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수사본부 구성원들의 삶까지 모두 피폐해지는데,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겨진 후 형사직을 그만두고 곽설영과 결혼해 영업 사원이 된 박두만 형사가 17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 근처를 지나다 당시 첫 사건 현장이던 장소에 멈춰 다시 그곳을 들여다보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개봉 직후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너무나 충격적인 스토리와 장면들 때문에 몇 가지 강렬한 잔상들만 뇌리에 남게 했던 이 작품은, 그러나 이후 주저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영화가 되었고, 그렇게 다시 감상할 때마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출연진들의 빼어난 연기력을 새로이 곱씹게 만드는 명작으로 인식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지나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서 ‘다사다난’이라는 한마디로 많은 것이 축약되는 1980년대를 묘사함에 있어 오늘날과 대조되거나 동일시될 수 있을 다양한 시대상들을 풍자와 비판을 골고루 섞으며 밀도 있게 그려 내는 접근법을 보여 주고 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전혀 변화도 발전도 없어 보이는 모습들 중 하나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증거를 갖다 붙이는 식의 수사 ‘기법’으로, 최초의 주요 용의자가 된 백광호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의 운동화를 가져다가 젖은 땅에 족적을 남기고 사진을 찍은 후 증거물이라고 보고하거나 범행 장소 근처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다 붙잡힌 “조병순”에게 자백 ‘연습’을 시키며 – 사실상 ‘대사’를 외우게 하며 – 자신들에게 구타 당해서 생긴 얼굴의 상처조차 범행 중 입은 상처라고 자백하도록 강요하는 대목은 오늘날 방식만 조금 덜 노골적이 되었을 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끼워 맞추기” 식 수사의 전형을 고발하는 장면들입니다. 그나마 용의선상에 오른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조용구 형사와 그런 가혹 행위를 한 조 형사를 향해 “때리지 말라니까!”라고 소리치며 자기가 더 심하게 때리고 발로 차는 신동철 반장의 모습이 지금 시점에서 어이없어 보이는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특정 음악을 특정 인물이 신청했던 비 내리는 밤 사건이 일어나곤 했다는 사실을 감지할 만큼 능력 있는 수사관인 권귀옥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정 수사의 ‘미끼’ 역할 정도로, 혹은 다른 형사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는 ‘용도’로 소모된다는 사실 역시 오늘날의 상황을 반추해 보게 합니다. 물론 지금은 성평등 인식이 상당 정도 자리를 잡았고 경찰이나 군인으로 복무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추세이기는 하지만, 회의 과정에도 정식으로 참여하지 못하던 권귀옥 경사가 위의 사실을 언급하며 방송국에 연락해 놓았다는 경과 보고를 할 때 귀담아 들어 주는 이는 오직 서태윤 형사뿐이고 다른 이들은 그저 “추리소설 많이 읽었구만”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상황에도 여성이 제시하는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남성의 그것과 동일한 의미와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조직 체계들이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우려를 선뜻 지우기 어렵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 문제의 곡 “우울한 편지”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하자 언제 어디에서 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지 모르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전경 2개 중대를 요청했던 신동철 반장이 그들 모두가 시위 진압을 하러 출동해 남아 있는 병력이 하나도 없다더라고 한탄하는, 그리곤 다음 날 새로운(다섯 번째) 희생자가 발견되는 장면에서도 이제 4년 전이 된 ‘최근’의, 전혀 엉뚱한 곳에 인력을 투입하느라 - 역시 시위 진압에 병력을 동원하고 정권 비판 전단지를 떼는 일에 행정력을 쏟아붓느라 - 막상 공권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음에도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해 159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난 시절의 실수와 착오가 반복되지 않고 한걸음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지요.
애초에는 특별수사본부의 팀원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던, 그래서 직감이나 미신 등으로 수사하는(자신의 별명이 “무당 눈깔”이라고 자랑하는) 박두만 형사나 용의자에게 무지막지한 폭력부터 가하고 보는 조용구 형사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던 서태윤 형사가 수사의 진행과 함께 점점 변해 가는 모습도 영화에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비 오는 밤길을 혼자 걸어가던 아무런 죄 없는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범인에게 울분을 품어 온 그는, 수사 과정에서 몇 번 마주치며 알게 된 여중생을 같은 방식으로 살해한 범인이 박현규일 것으로 추정되자 물증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는데, 확실한 증거가 될 유전자 감식 결과로 박현규의 유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의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 본인의 논리를 팽개치고 – 여태껏 촉과 감으로만 수사하던 박두만 형사는 오히려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 “뭔가 잘못 됐다”라고 되뇌이며 폭력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자백을 받아 내려 합니다.
박현규가 범인임을 확신하는 서태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 중의 악마인 그에게 ‘의로운 분노’가 느껴져 사적 단죄라는 방식으로라도 처벌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고, 처음 영화를 봤던 당시나 이후 다시 시청하는 동안에도 그런 그의 심정을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는 하나, 이전까지 박두만과 조용구의 감정적, 비논리적 수사 방식을 비웃던 그의 태도를 떠올린다면 인간의 자기 ‘의’나 확신, 가치관 등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쉽게 변하는 것인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반추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총까지 들이대며 살인범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다가 상대가 말을 듣지 않자 실제로 그를 향해 총을 쏘려 드는(박두만이 말리지 않았다면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났을) 서태윤의 모습을 통해, 아무리 선하고 의로워 보이는 인간이라도 –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 자신은 – 섣불리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마음 깊이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