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화된 삼나무 목재 집, 골목의 작은 신당들

by공학자C

2026년 4월 30일 목요일, 비


일본에 이주한 백제계 도래인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이곳 일본에는 삼나무가 많아서 삼나무 목재를 건축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는만큼만 보인다. 삼나무로 지어진 집들”


역시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늘 명심하고 있는 말이다. 어제 공부를 해서인지 늘 등하교길에 마주하던 이곳 주민들의 집의 자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아무래도 삼나무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이었다.


살짝 탄화를 시켜서 내멸성과 내식성을 가지게 한다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나 서구권에서는 통상 목재를 산화구리수용액 등에 침지시켜 방부목으로 것과 유사한 기능을 부여하면서 교토스러움이 묻어난다. 약 40~50년은 넉근히 사용할 수 있고, 표면이 시간의 풍화에 따라 벗겨지면서 수명을 이어간다고 한다.



“골목의 작은 신들”

나의 등하교길에서는 작은 신당으로 묘셔진 지장보살(오지조상, お地蔵さん)을 여럿 만나게 된다. 교토의 골목에는 이러한 신당도 참 많다. 나의 체감적인 데이터로는 이전에 방문했었던 시모노세키나 후쿠오카, 홋카이도보다 그 밀도나 숫자가 높은 것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단순한 전통의 파괴를 넘어, 정체성 및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겪었다. 이로 인해 슬롯 계층의 역동성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생겨났으나, 그 외의 측면에서는 부작용이 너무도 많다. 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마치 ‘정신(얼)이 부재한 육체’만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나아가는 형국이라 본다.


아주 어릴 적 시골에 가면 어른들께서는 주방이나 장독대, 문지방 등을 지날 때 늘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가족과 집을 지켜주는 가신(家神)들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한국에도 사람들이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 신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전통의 정서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던 토양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그런 흔적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오늘도 마주한 교토 골목의 작은 신당들은, 어쩌면 문화적 단절 없이 현재까지 일본인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숨 쉬고 있는 ‘살아있는 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image.png[사진 무단 사용 금지: 내 거주지 근처 신당 중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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