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고쇼(京都御所)와 윤동주 시비를 찾아가다

by공학자C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오전 비 / 오후 흐림

「오전 – 하루 일과 준비」


아침식사를 마치고 1층 비품실에서 진공청소기를 빌려 방 청소를 했다. 기숙사 입주 이후 첫 청소였다.

오전 내내 비 예보가 있어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비가 그치면 교토고쇼(京都御所)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 외 일정은 아직 없다. 내일이 첫 수업이라 마음이 조금 두근거린다. 13년 만에 정식 학생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제도권에서의 배움은 설레기도 하지만, 첫 해외 수업이라는 점 때문에 긴장감 또한 적지 않다.


과거 박사 과정 역시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기에 힘들어도 유익했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며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다만 당시에는 학위 취득이라는 명확한 목표와 생계를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지금의 일본 유학은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마음이 더 편안하고 이 상황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2년간 대출 이자를 포함해 1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는 유학이지만, 그 대가로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내 삶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낀다. 게다가 교리쯔 재단 기숙사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생으로서 누리는 실질적인 주거 혜택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오후 – 계획한 일정 진행]


오후 1시가 조금 안 되어 밖으로 나갔다. 비는 소강상태였으나 보슬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다 이내 그쳤다.

교토고쇼(京都御所)로 향했다. 도보로 약 40분 거리였는데, 날이 쌀쌀해진 덕분에 걷기에 쾌적했다. 도쿄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 천황들이 머물던 궁이라고 한다. 이곳은 교토코엔(교토국립정원)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치 깊은 숲길을 걷는 듯 상쾌했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경복궁과 비교하며 관람하게 되었는데, 한국 건축 양식에 관점이 머물고 있는 내 기준에서는 한국의 궁보다 다소 소박하고 건축 구성이 이색적이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진 무단 사용 금지: 교토고쇼, 교토코엔 전경(도쿄 천도 이전까지 일본의 황궁)]


약 1시간의 관람을 마치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으로 향했다. 리츠메이칸과 함께 교토의 양대 사학이자 도쿄의 와세다, 게이오에 비견되는 명문대답게 건물이 매우 이국적이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윤동주 시인의 추모비와 정지용 시비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샤대학은 두 시인의 모교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현지의 일본인 학생들에게 윤동주라는 이름은 그리 크게 각인되지 않은 듯 보였다. 우리에겐 망국의 아픔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들에게는 침략 역사의 한 단면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무단 사용 금지: 도시샤대학 전경, 교정 내 윤동주 시비 모습]


[오후 – 외국인 혐오를 겪다]


돌아오는 길에 무척 불쾌한 일을 겪었다. 니조성 근처 공원을 지날 때였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현장 노동자 차림의 일본인 남성이 길 건너편에서 나를 향해 무언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공원 사진을 찍은 직후였는데, 일본어가 서툴러 정확한 뜻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韓国人です。日本語無理です。(한국인입니다. 일본어 못합니다.)"라고 답하자, 그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かんこくじん!(한국인!)"이라 내뱉고는 지나쳐 버렸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다. 일본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노골적인 차별이자 혐오였다.


앞으로는 굳이 서툰 일본어로 대응하거나 한국인임을 먼저 밝히지 말아야겠다. 차라리 "I can’t speak Japanese. What do you mean?"이라며 영어로 강하게 응수하며 단호한 인상을 심어주어야겠다.

대체로 친절한 이들이 많지만, 이토록 무례한 일본인도 분명 존재한다.

하루의 마무리가 불쾌한 기억으로 얼룩져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