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의 해시계가 알려준 나만의 리듬
오늘 새벽에 발행한 글 속에 나오는
'해를 바라보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
사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심리학자들에게는 조금 고약한 습관이 하나 있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을 들여다보며 그 마음을 읽어내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대입해 보는 버릇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익숙한 틀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재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성찰'이라고 부른다.
앞서 올린 글은 사실 나 자신에게 건네는 고백이었다.
'사랑'이라는 비유를 빌려왔지만,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삶의 한 조각에서 출발했다.
고산지대의 해는 정말 일찍 뜬다. 그리고 한낮의 태양은 얼마나 따가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곳 사람들의 피부가 왜 구릿빛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해가 일찍 뜨니 산사람들은 날이 새자마자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곧장 밭으로 나간다. 햇살이 새벽의 찬 공기를 조금 따뜻하게 데울 즈음이야 집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이것이 말 그대로 '온라인카지노(Brunch)'의 원형이다.
식사 후 남은 일을 마치고 산그림자가 길어지는 늦은 오후가 되면, 그들은 일찌감치 저녁을 준비한다. 그렇게 이른 저녁을 먹어보지 않은 이에게는 참 어색한 밥상이다.
하지만 산사람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 겹겹이 둘러싸인 고산 마을의 밤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찾아오기 때문이다.
산 아래에는 가로등도 켜지고 장사하는 이들로 활기가 넘치지만, 캄캄한 산 위에서는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일찍 먹은 저녁은 자연스럽게 일찍 잠자리에 들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고산 마을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산사람과 산 아래 사람들이 해를 향해 투덜댄다고 썼다. 하지만 산사람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나처럼 불쑥 찾아온 이방인이나 그렇게 툴툴댈 뿐이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랬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온라인카지노'를 먹는 시간이었다.
일어날 때는 배가 고팠는데, 막상 그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상이었다.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뿐더러, 이른 잠은 오지도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배만 고파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칠흑 같이 어두워진 밤은 길고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 잠이 적은 내게 산속의 어둡고 긴 밤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자다 깨어 일어나도 새벽은커녕 아직 저녁의 한복판일 뿐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달빛과 은하수도 하루 이틀이지, 밤마다 반복되면 무감각해질 뿐이다.
하루 일과 중에서 시작된 '온라인카지노'라는 생소한 리듬이 내 속의 시계를 사정없이 어지럽혀 놓은 것이다. 잠들려 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일을 마치고 나면 정작 낮에는 할 일이 없어지는 모순에 빠졌다.
결국 나는 이른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내던 곳에서 걷기로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제법 큰 장이 열리는 산중턱 마을이 나왔다. 말이 한 시간이지, 고산 비탈길 한 시간은 일종의 산악훈련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곳에는 밭으로 가는 대신 이른 새벽부터 장사를 위해 자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거기서 아침을 사 먹고 아랫마을을 둘러본 후, 다시 산으로 돌아와 내 일을 했다. 그리고 산사람들의 온라인카지노 타임에는 가볍게 허기만 채우고, 정오부터 다시 내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낮 동안 지친 몸으로 저녁을 맞이하니, 밤이 되자 비로소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몸이 피곤하니 잠도 절로 찾아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온라인카지노 타임'을 스스로 조정하기로 한 순간이었다.
산사람과 산 아래 사람들의 '해'에 대한 글을 썼던 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라인카지노'라는 플랫폼이 가져다준 내 시계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글쓰기 속에서 느꼈던 일종의 강박을 바로잡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가졌던 '글 쓰는 기쁨'이 강박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다.
삶의 패턴이 바뀌면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오판하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한 착각은 원래의 제 모습을 잃게 만들고, 내일에 대한 계획과 갈 길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처음 '온라인카지노 작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가 그랬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것', '원래 그런 것'이라며 어물쩍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내 성격까지 합리화시키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본래 '자신이 가진 겸손'을 잃으면 '착각'이라는 입구 좁은 호리병 속에 갇혀 오만방자해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나의 판단 착오이며 오판일 뿐이다.
독자가 어느 날 작가가 된다?
아니, 작가가 어느 날 독자가 된다?
온라인카지노에서 나의 위치를 두고 혼란이 왔다.
도대체 나는 '독자'인가, '작가'인가?
그런 가운데 펼쳐지는 수많은 '품앗이'는 마치 해를 탓하는 산 사람들처럼 보였다. 정작 억울한 건 온라인카지노일지도 모른다. 자리를 바꾸어 '작가적 독자'가 되고, '독자적 작가'가 되어야 할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작가'만 혹은 '독자'만 고집하려니 혼란이 오고 어지러운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가졌던 '쉼'을 통해, 나름의 결론과 해결바카라을 찾았다.
글을 쓸 때는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독자적 작가'의 입장에서 쓰고, 글을 읽을 때는 작가의 노고를 가늠하는 '작가적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품앗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소한 내가 얻은 교훈과 성찰은 이것이다.
'좋아요'는 정말 좋을 때나 누르면 된다. 아무에게나 꼬리 치며 달려가 하트 뿅뿅 날리는 강아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싫으면 싫은 것이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며, 흥미가 없으면 그저 그런 것이다.
굳이 형식적인 품앗이를 한답시고 하트를 날린 뒤 "나도 왔으니 오라"며 꼬리 흔드는 유치함... 그건 작가답지 못한 것 같다.
온라인카지노에서 제대로 된 '건강한 품앗이'.
방법은 간단하다.
읽을 때는 작가적 독자가 되고,
쓸 때는 독자적 작가가 되자.
[내일 새벽 5시 발행]
첫 번째 The Reimagined Edition은 지난해 12월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 첫사랑을 닮았던 일본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부고를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써 내려간 글이었죠. 이전 글의 일부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한 글, 「이별 연습」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