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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는 누가 뺐나요?

경고보다 평온을 사랑하는 공동체에 대하여

byItz토퍼

※ 이 글은 이전 글 「정말 폭싹 속았수까?」의 일부 내용에서 얻은 사유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4bdb90e-baa8-4d2f-b735-09d3b1ecbf9d.jpgby Gemini


내 속에는

애순이와 관식이 둘이 모두 산다.


그래서 가끔은 내향인이지만

또 가끔은 외향인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가끔은 애순이가

나에게 이런 역할을 맡게 하더라.


'입 바른 사람'


그래서 가끔은 밉상이 된다.

그런데 이런 밉상, 필요하지 않나?


우리 슬롯에는

'입 바른 사람'이라는

희귀 직종이 분명 필요하다.


비록 월급도 승진도 없고,

하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지만.


온라인 게임 생활 가운데

항상 이런 사람 한 명 정도 있지 않나.


그들의 회의실 단골 메뉴 한 마디.

"저,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 순간 회의실 온도는 3도쯤 내려가고,

누군가는 노트북에서 중대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또 누군가는 빈 커피잔을 홀짝거리고,

또 누군가는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다.


사실 다들 속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열 명 모두 아는 사실을 모두 모른 척해 주는

참으로 정교한 협력 시스템이 있다.


학계는 이를 '다원적 무지'라 부른다.

조금 고급스러운 명칭인가?


아무튼,


입 바른 사람은

이 아름다운 합의를 깨는 불청객인가?


아니면,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라는

속삭임을 끌어내는 첫 번째 도미노인가?


하지만,


첫 번째 도미노는 운명적으로 쓰러져야 한다.

그게 이 직종의 산재 항목이니까.


또 한편으론,

이들은 조직의 화재경보기와 같다.


그런데 어떤 조직은 불이 났을 때

경보기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건전지부터 뺀다.


그래서 경보가 꺼진 사무실은 불은 계속 타지만

놀랄 만큼 평화롭고 고요한다.


입을 막는 공동체의 레퍼토리는 일관된다.


첫 번째가 바로 '분위기'다.


부당함이 문제가 아니라,

말한 사람의 타이밍과 톤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말하면 와닿지 않는다 하고,

단호하게 말하면 날이 서 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말하면 따로 얘기하지 그랬냐 하고,

따로 말하면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결국 옳은 말의 조건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에게만 말하기'다.


우리는 그것을 '독백'이라고 부른다.


다음은 낙인이다.


잘못한 사람은 '실수한 분'이 되고,

말한 사람은 '조직에 안 맞는 분'이 된다.


기나긴 인류 역사 가운데 납을 금으로는 못 바꿔도,

제보자를 문제 인물로 바꾸는 연금술만큼은 탁월하다.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재난 전에는

경고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고는 있었고, 받아줄 귀만 없었다.

그때서야 공동체는 외친다.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나!"


말한 사람은 이미 퇴사했고,

그 자리는 비어 있으니까.


남은 조직은 매년 정화된다.

다만 정화되는 것이 양심이라는 점이 문제다.


몇 해 지나면

회의실에는 만장일치만 남는다.


초효율이 보이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다

절벽에 도착하는 시간이 단축될 뿐이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입 바른 사람에게도 숙제는 있다.


정의감이

사실 확인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근거는 꼼꼼히 챙기고,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겨눠야 한다.


정의에도 근거 서류는 필요하다.

물론,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도

낙인은 별도 비용 없이 따라온다.


건강한 공동체는

불편해도 일단 끝까지 듣는 곳이다.


병든 공동체는

'입 바른 사람'부터 정리한다.


전자는 불편함을 치르고 안전을 얻고,

후자는 편안함을 얻고 사고를 예약한다.


계산서는 타이밍을 제대로 맞춘다.

그것도 가장 나쁜 순간에.


다음에 누군가

"저,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하거든.


노트북에서 신대륙을 찾지 말고,

빈 커피잔도 홀짝거릴 필요 없이,

화장실 조금만 참으며 함께 생각하자.


그리고 건전지를 빼기 전에,

일단 연기부터 확인하자.



[내일 발행 글] 『무심한 질문 속에 담긴 나의 시선』 - 익숙한 프레임 너머로 세계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숙한 시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심코 던진 질문 속에 타인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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