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운뎃날, 그리고 달빛 저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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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아주 오래전, 신라의 여섯 마을에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베를 짰다.


음력 칠월 열엿새부터 팔월 보름까지, 한 달 남짓.

새벽닭이 울기 전에 일어나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놀렸다.


진 편은 음식을 장만해 이긴 편을 대접했고,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그 끝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탄식하듯 읊조렸다고 한다.


그 가락이 어찌나 구슬프고 아름다웠던지, 후세 사람들이 곡조를 붙여 노래로 남겼다. 다만 그 가락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노래가 있었다는 사실과 '회소곡(會蘇曲)'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날을 사람들은 '가배'라 불렀다.

가운데라는 뜻이었다.


한 달의 노고가 마무리되는 자리,

계절의 허리께에 놓인 하루.


여기에 '크다'는 뜻의 '한'이 더해져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크고 으뜸가는 가운뎃날.


말은 소박하고 있는 그대로를 전한다.

굳이 무엇을 느껴라 말하지 않으니까.


다만 가리킬 뿐이다.

여기가 한가운데라고,

여기까지 우리가 함께 살아왔다고.



【추석】



그런데 같은 날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름은 전혀 다른 곳에서 왔다.


아득한 옛 경전 한 구절, "봄에는 아침 햇살이 좋고 가을에는 저녁 달빛이 좋다"는 말에서 '추(秋)'와 '석(夕)'을 떼어와 붙인 이름, 추석.


이 말은 날짜를 가리키지 않는다.

몇 월 며칠인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한 폭의 그림을 펼쳐 보일 뿐이다.


선선해진 바람, 낮게 내려앉은 노을,

그리고 천천히 차오르는 달.


그래서 추석이라는 두 글자 안에는

이미 달빛이 스며 있다.




그러니 같은 하루를 두고

두 개의 이름이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시간 속의 자리를,

하나는 그 시간이 품은 빛을.


한가위가 달력을 짚는 손가락이라면,

추석은 그 손가락 끝에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우리는 두 이름을 다 살아낸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는

한가위의 마음으로 걷는다.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한 해의 절반쯤 되는 지점에

우리가 지금 서 있다는 감각으로.


그러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어느새 추석의 마음이 된다.


말이 필요 없어지는 저녁,

그저 달빛 아래 함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한가위는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추석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신라의 베틀 소리에서 시작된 이름과,

옛 경전의 한 구절에서 건너온 이름.


하나는 노동의 끝에서,

하나는 관조의 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두 이름 모두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걸어와

한 저녁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저녁,

우리는 늘 같은 마음으로 되뇐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서로가 가진 만큼 서로를 채우기를."



[내일 글] 소주 한 잔 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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