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까지 무대에 선다면, 우리가 마주할 질문은?
이분들이 누구인지 아시는가?
한 시대를 풍미하며 7080 팝 세계를 주름잡았던 팝 그룹 ABBA의 현재 모습이다.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은 자신들의 디지털 아바타 제작을 위해 착용한 모션 캡처 특수 의상이다.
ABBA Voyage: Die wichtigsten Fragen und Antworten zum Show-Event— Rolling Stone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아질까?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란 엉뚱하거나 음흉하거나 나쁜 상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우리가 여태 공상과학영화 속 이야기라고 여겼던 시나리오가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어느 날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가수가 무대 위에 서 있다면 어떨까.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익숙한 얼굴이다. 목소리도 같다. 걸음걸이와 표정, 노래를 부르는 방식까지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분명 그의 장례식은 수많은 팬들에게 눈물과 아쉬움을 남겼는데, 그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다.
정말이었다. 관객은 환호하고, 조명은 그를 비춘다.
그는 분명 무대 위에 있지만, 정작 그곳에는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디지털 아바타 공연이 던지는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아티스트에게 과연 다시 무대에 설 권리가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다.
사실 이런 공연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공연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지고 있고, ABBA의 ‘Voyage’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2022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Voyage’에서는 ABBA 네 멤버가 직접 모션 캡처에 참여해 젊은 시절의 모습을 디지털로 재현했다.
이 아바타는 실제 라이브 밴드와 무대·조명이 결합된 전용 공연장에서 하나의 완성된 공연으로 펼쳐졌다. 실제 아티스트가 무대에 직접 서지 않아도 ‘라이브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당시 ABBA의 네 멤버는 모두 7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실제 소개 영상이 있으니 일단은 보면서 이어서 읽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객은 ‘과거의 기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공연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공연의 개념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디지털 아바타는 시작에 불과하다.
‘Voyage’는 살아 있는 아티스트가 직접 남긴 데이터 위에 세워진 무대였다.
멤버들이 모션 캡처 장비를 입고 연기해야 아바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AI는 이 전제를 흔든다. 남아 있는 공연 영상과 음원, 인터뷰, 사진만으로도 한 사람의 특징을 학습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음색만이 아니라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 고음에서 갈라지는 버릇, 발음의 습관까지 재현될 수 있다. 얼굴은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주름과 노래를 시작하기 직전의 표정까지 따라 할 수 있고, 걸음걸이와 손짓, 마이크를 쥐는 방식 같은 몸의 습관도 데이터가 된다.
여기까지는 기억 속의 모습을 정교하게 복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놀라운 변화는 복원이 ‘생성’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생전에 녹음한 적 없는 신곡을 그의 목소리와 창법으로 부르게 해서 신곡을 발표할 수 있다.
한 번도 부르지 않은 다른 가수의 노래를 커버하게 할 수도 있고, 한국어로만 노래했던 가수가 영어와 일본어, 스페인어로 월드투어를 도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전성기의 20대와 원숙해진 50대의 모습을 한 무대에 나란히 세우는 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에 대화형 AI가 결합되면 아바타는 정해진 영상을 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객의 반응을 읽고 그 자리에서 말하는 존재가 된다.
그날 객석의 분위기에 맞춰 곡 순서를 바꾸고, 팬이 외친 신청곡에 응답하고, 앙코르 무대에서는 그 사람이 평소 쓰던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공연. 관객마다 조금씩 다른 무대를 보게 되는 날도 올 수 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상상이 아니다.
이미 그 조짐은 있다.
2023년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으로 소개된 ‘Now and Then’은 AI 음원 분리 기술로 존 레넌의 오래된 데모 테이프에서 그의 목소리를 골라내 완성한 곡이다.
이때 AI가 한 일은 ‘있던 목소리를 살려낸 것’이었다.
그러나 없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술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의 디지털 아바타가 ‘과거를 재생하는 공연’이라면, AI가 만들 무대는 ‘과거에 없던 현재를 만들어내는 공연’이다.
기술이 여기까지 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활동이 어려운 아티스트를 대신해 디지털 아바타가 공연할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를 다시 무대에 세울 수도 있다.
그 순간 아티스트의 초상과 목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창작 자산’이 된다.
문제는 그 선택을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생전에 아티스트가 디지털 재현에 동의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기를 원했는지, 사후에는 누가 그 권한을 행사할 것인지. 얼굴과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대사를 말하게 하거나, 생전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까지 허용할 것인지도 따져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술 계약이 아니라 존재에 관한 계약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티스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음악과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계약한다. 앞으로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 퍼포먼스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계약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는 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팬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기술적으로 완벽한 재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제 공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다.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은 아티스트의 얼굴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살아 있었던 시간일까.
특히 고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빌려 새로운 말을 하게 만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창작물의 바카라임과 의미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래서 앞으로의 디지털 공연에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진짜 같은가’가 아닐 것이다.
‘누가 허락했는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허락했는가.
가족과 유산 관리자가 동의했는가.
계약은 어디까지 허용하고 있는가.
관객에게 디지털 재현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렸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티스트가 생전에 남긴 뜻과 어긋나지는 않는가.
기술은 이제 세상을 떠난 사람마저 다시 무대 위에 세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무대에 세울 수 있다는 것과, 세워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창작권은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보다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가 아닐까.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를 다시 무대에 세우는 기술은 결국 우리에게 묻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존중할 것인가.
미래의 공연장은 이 두 선택 사이에서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