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한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한가
1부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능력으로 정의하는 순간 인간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 '잘함'이 아닌 '존재함'이라는 다른 질문이 놓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그 질문을 따라가 보자.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나더라도 '인간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AGI가 인간보다 뛰어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보낸 기억까지 AGI가 대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GI가 인간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들었던 특정한 노래가 나에게 가지고 있는 의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GI가 인간보다 훌륭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경험까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와 경험의 차이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인간의 삶 자체를 대신하는 것은 동일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게 삶은 단순한 결과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이고, 기억이며, 관계이고,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래서 이 질문은 결국 존엄의 문제로 이어진다.
만약 인간의 존엄이 지능, 생산성, 창의성, 경제적 기여에서 나온다면 AGI 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와 무관하게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생각은 사실 AGI가 만들어낸 새로운 철학이 아니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오랫동안 이러한 방향을 향해 발전해 왔다.
누군가의 생명이 가치 있는 이유를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로 결정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도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에 달려 있지 않다.
인간의 존엄은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르는 능력의 서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AGI 시대는 어쩌면 이 오래된 원칙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되묻게 할 것이다.
그러나 '존재 자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문제는 인간 자신도 자신의 가치를 생산성과 연결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쉬면서도 죄바카라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면 “오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업을 잃었을 때 단순히 소득만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은퇴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평생의 수고를 무사히 마쳤지만, 일이 사라지고 그에 따라 일정한 소득도 끊기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AGI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만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깊은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을 잃어버리는 것일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잘하지?"
"나는 슬롯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지?"
"AI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인간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기술적 풍요가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AG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재교육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때에 이르러,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오해를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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