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노트 시리즈: 작가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무엇을 붙들 것인가
1839년 어느 날, 파리의 한 화실에 폴 들라로슈라는 화가가 앉아 있었다.
그의 손끝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이 묻어 있었고, 그 앞에는 손바닥만 한 은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게레오타입, 빛만으로 상을 그대로 은판 위에 새겨 넣는 이 낯선 발명품을, 그는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었다.
붓 한 번 닿지 않았는데도 사람의 얼굴이, 그 주름과 그늘까지 고스란히 거기 있었다. 몇 주씩 걸려 완성하던 초상이, 이 작은 은판 앞에서 별안간 낡은 기술처럼 느껴졌을 그 순간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전한다.
"오늘부로, 회화는 죽었다."
다만 이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 문구가 들라로슈의 말로 인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870년대의 일이었고, 1839년 당시의 기록에서는 같은 말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이다.
이것은 어쩌면, 사진 앞에서 화가들이 느꼈을 그 막막함을 후대 사람들이 대신 빌려 쓴 한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에 가까웠기에, 오래도록 살아남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작 이 일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들라로슈 자신은, 18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사진을 회화의 무덤으로 보지도 않았다.
1839년, 프랑스 정부가 다게르의 발명품을 평가하기 위해 꾸린 위원회에서 그는 이 낯선 기술이 화가에게 관찰과 연구를 위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예술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는 발명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회화의 죽음을 선언했다는 사람이, 정작 그 죽음 옆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일화가 다소 부풀려졌다고 해서, 그 시절의 두려움까지 부풀려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은유가 아니라 생계였기 때문이다.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상아판이나 종이 위에, 눈매 하나 입매 하나까지 정성껏 그려 넣던 미니어처 초상화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얼굴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씩 매달렸다.
그런데 다게레오타입은 그 얼굴을 단 몇 분 만에, 그것도 훨씬 싼값에 붙잡아냈다.
1840년대와 50년대를 지나며 미니어처 초상화를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많은 화가들이 붓을 내려놓고 다른 일로 옮겨갔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인화 일을 하거나, 흑백 사진 위에 손으로 색을 입히며 생계를 이어간 이들도 있었다.
186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때 한 시대를 대표하던 이 손끝의 기술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들에게 이것은 미학의 논쟁이 아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