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끝에 남은 마음

(후)에만 남긴 진심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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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종이

위에는

두 개의 손이 산다.


한 손은

마음 가는 대로

선을 긋는다.


끝을 정하지 않은 곡선 하나,

뜻을 얻기도 전에 멈춘 단어 하나,

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채

흐려져 버린 문장 하나가

빈 종이 위를 길바람처럼 헤맨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겨 던져 버리면 그만.

종이는 아무 말이 없고

펜은 지나간 자리를

기억한 적이 없다.


공복에 마신 술에 취해

갈 곳도 없이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그 손도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이리저리 백지 위를 헤맬 뿐이다.

이것도 쓸모 있는 시간일까.


목적을 잃은 걸음 사이로

제법

날숨과 들숨이

서로의 보폭을 맞추고,

갈 곳 없는 선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오래 접어 두었던 마음 하나가

뜻밖에도

제 모양을 찾아

그 선을 따라 지나간다.


흐르는 대로

흘려보내는 시간,

그 느슨함이

때로는 굳어 있던 어깨를 풀어주고

오래 조여 있던 마음의 매듭을

조금씩

서툴지만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백지가 끝내

그런 선들로만 채워진다면,

먼 훗날

오래 접어 두었던

한 페이지를 펼쳤을 때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도,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간 마음의 흔적만

어지럽게

남아 있을 것이다.



(후)


그래서

다른 한 손은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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