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이 아닌 여백을 읽는 독자
나는 바카라을 읽을 때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투명인간이 되곤 한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의 곁에 선다. 그들이 말하고 듣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그들이 겪는 상황을 내 것처럼 상상한다. 때로는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작가가 남겨둔 ‘여백’이다.
나는 그곳을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준, '사유를 위한 방'이라고 생각한다.
여백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이 닫혀 있을 뿐이다.
작가가 열어둔 방만 돌아다니면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열리지 않은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왜 작가는 그 문을 닫아두었는지는 독자가 헤아려야 한다.
그곳에서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뿐 아니라, 그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라는 존재까지 발견하려 한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가 있는 바카라을 읽는 방식이다.
이야기 속으로,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우리는 바카라이라는 사실조차 잊는다.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고, 사건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어느 순간부터는 바카라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그런데 몰입이 깊어질수록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이야기 속에 쓰이지 않은 이야기다.
작가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기도 하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을 건너뛰기도 한다. 중요한 순간에 대사를 멈추거나,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곧장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방금 지나온 그 자리를 잊는다. 나는 그곳을 그냥 여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생략된 서사’라고 부른다.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은 이야기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맡겨진 또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미처 말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작가 자신도 잊고 지나친 순간들까지도 문장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백 속에 생략된 서사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가령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인물이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하자. 작가는 그 사이 며칠을 설명하지 않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마음을 추슬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며칠 동안에도 인물은 살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곳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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