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을 끝냈으니, 이제는 소주 한 잔으로
“소주 한 잔 할래요?”
한국에서 이 말만큼 뜻이 많은 문장도 드물다.
정말 소주가 마시고 싶어서 묻는 걸까?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자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목이 말라서
뭐든 한 잔 마시자는 말과도 다르다.
“소주 한 잔 할래요?”에는
이상하게도 말하지 않은 문장들이 따라온다.
아니, 따라온다기보다는
이미 수많은 문장이 잔뜩 담겨 있다.
‘오늘 좀 힘들었는데, 내 얘기 좀 들어줄래요.’
‘오랜만인데, 우리 아직 친한 거 맞죠?’
‘미안했어요. 그런데 제가 먼저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축하해요. 내가 진작 그 기쁨을 같이 누리고 싶었어요.’
‘괜찮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때로는,
그냥...
오늘 아무 말하지 않고
내 곁에만 있어달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소주는 관계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소주를 마시자고 하면 조금 부담스럽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는 가볍고,
“식사 한번 하시죠.”는 점잖다.
그런데 “소주 한 잔 하시죠.”라고 하면
갑자기 관계의 거리가 한 뼘 가까워진다.
소주는 이상하게도
사람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좁혀주는 술이다.
처음에는 잔을 조심스럽게 들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의 잔을 살피고
빈 잔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병을 기울인다.
“제가 따를게요.”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서로의 빈 잔을 발견해 주는 사람,
그리고 그 빈 잔을 다정하게 채워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소주 한 잔은 술 한 잔이 아니라,
“우리 조금 더 가까워져도 될까요?”라는
수줍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소주는 정(情)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다.
그런데 정이라는 것, 참 설명하기 어렵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담스럽고,
우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넓으며,
친절이라고 하기엔 깊다.
아마 정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남은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상대방에게 슬며시 건네주면서,
“더 먹어요.”
“괜찮아요.”
“괜찮긴. 어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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