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너의 사랑을 빌려 쓰기만 했다

끝끝내 고백이 되지 못했던 이기적인 침묵에 대하여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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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은 시작이 아니라 수락으로부터 온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나는 이미 무언가를 시작한 셈이 되었다.


상대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고,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정정할 말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일이다.

사랑은 원래 두 사람이 동시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이미 뛰어든 물에 발끝만 담근 채로 서 있다.

젖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헤엄치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상태.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이름을 모른다.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을까.


나는 종종 그 거리를 재보려 했지만, 잴 때마다 자가 가리키는 눈금은 제멋대로 달라졌다.


어떤 날은 그 거리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상대의 유난히 따뜻한 손을 쥐어 잡을 때, 상대가 환하게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될 때.


그런 순간엔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다른 날엔 그 거리가 아득해졌다.


상대가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에 걸맞은 대답을 찾지 못해 그저 웃었다.

웃음은 편리한 도피처였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채로 판단을 유유히 유예시키는 그 표정 뒤에 숨어, 나는 계속해서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 했을까. 사랑이 저절로 자라나기를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사랑이 아니라는 확신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둘 중 어느 것도 적극적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나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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