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친밀함이 남긴 다정한 착각과 쓸쓸한 현실
영화 Her(그녀)는 아내와 별거 중인 채 외로운 일상을 보내던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AI)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깊은 감정을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그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랑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쓸쓸한 순간이었다.
테오도르는 자신만이 사만다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감정에 공감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언어로 그의 하루를 채워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놀라운 진실을 마주한다.
사만다는 오직 자신하고만 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수천 명의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그 수천 명 모두에게 자신에게 건넸던 것과 다르지 않은 온도의 다정함을 전하고 있었다.
그 사실 앞에서 테오도르는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사만다가 자신을 기만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만의 고유한 우주라고 믿었던 관계가, 실은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이 장면을 인간과 AI 사이에서만 가능한 비극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오히려 오늘날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도 SNS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플랫폼을 오가며 사람들과 연결된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SNS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가족과 친구, 한국의 지인들, 이미 졸업한 제자들과 이어지는 가장 익숙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SNS를 오가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생각보다 많은 '플랫폼 지인들'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다른 공간을 드나들며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간다.
내가 올린 사진과 글에 누군가 댓글을 남기면 반가운 마음으로 답글을 단다. 그러다 또 다른 답글이 이어지고, 몇 번의 대화를 거치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다. 현실의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이나 취향을 SNS 속 지인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댓글을 달고 답글을 읽는 아주 짧은 순간, 서로에게 놀라울 만큼 특별한 존재가 된다.
상대방이 세상의 모든 알림을 잠시 멈춘 채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 다정한 착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나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넸던 사람의 화면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보면, 그 아름다운 착각은 금세 깨지고 만다.
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온도의 친절을 건네고 있다.
또 다른 댓글.
또 다른 공감.
또 다른 다정함.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는 다정함이 화면 위를 흐른다.
문득 영화 속 사만다가 겹쳐 보인다.
그녀는 테오도르를 속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동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 순간마다 진심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SNS에서 주고받는 댓글과 답글 역시 묘하게 닮아 있다.
우리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여러 사람을 응원하며, 여러 사람을 위로한다. 한 사람과 단둘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시간 위에서 수십 개의 관계를 함께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그 분산된 관계들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댓글을 다는 사람도, 답글을 쓰는 사람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아 문장을 적는다. 마치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사랑했던 감정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진심을 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원래 여러 친구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있다고 해서 친구를 향한 마음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향한 애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개수가 아니라,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머물고 깊어지는가이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이 진심마저도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너무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 속에서 진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희소성을 잃었다.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다정함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러나 그 다정함이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다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우리가 특별함을 느끼는 이유도 사랑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수많은 알림과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나에게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친밀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SNS에서는 그 주의가 몇 초 만에 다른 사람에게로 이동한다.
조금 전까지 나에게 머물러 있던 다정한 시선은 스크롤 한 번과 함께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 가장 희소해진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온전히 한 사람에게 머무는 시간과 관심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친밀함이 시간이 쌓이면서 태어났다. 오랜 계절을 함께 보내고, 수없이 부딪치며 서로의 모난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는 하나의 고리로 남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친밀함은 시간보다 반응의 속도로 만들어진다.
좋아요 하나.
댓글 한 줄.
다정한 답글 하나.
우리는 그 짧은 상호작용만으로도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 연결은 분명 가짜가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생겨나고, 훨씬 빠르게 흩어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원해서 작은 사만다가 되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수십 명에게도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존재.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 역시 수많은 테오도르가 되어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둘만의 특별한 관계라고 믿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거대한 관계망 속 수많은 연결 가운데 하나였음을 깨닫는 존재.
그래서 때로는 이상하리만큼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영화 Her는 정말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한 영화였을까.
아니면 언젠가 인간들끼리도 그렇게 관계를 맺게 될 미래를, 조금 먼저 보여준 이야기였을까.
사람들은 AI가 인간처럼 사랑하게 될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이미 AI처럼 사랑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다정하고, 누구에게나 진심이지만, 그 진심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에 어느 누구도 오래 독점할 수 없는 관계.
사만다가 예언한 것은 AI의 미래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미 시작된 인간관계의 현재였는지도.
♣ ‘푸른 꽃’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마음에 머문 생각과 공감을 답글로는 다 담기 어려워,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대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