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선율의 궤적 (제6편)
세상을 움츠리게 할
가장 역설적 음악
어떤 종교에서든 지옥이라는 곳은 공포와 저주 그 자체로 그려진다.
삶의 막이 내려졌을 때 마주해야 하는 영원한 심판과 끝나지 않는 징벌. 그래서 '지옥'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태도를 고쳐 잡고, 왠지 모를 종교적 경외감이나 도덕적 당위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 공포의 심연에 음악이 흐른다면 어떨까.
과연 그곳에는 어떤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을까?
'지옥의 음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의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연상한다. 저음역대의 가라앉은 음색, 숨 막힐 듯 느린 템포, 그리고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화성.
그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의 고통과 심연에 어울리는 소리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캉캉, 즉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에 등장하는 「지옥의 갤럽」은 이러한 청각적 기대를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배반한다.
자크 오펜바흐의 캉캉(정확히는 "Galop infernal", 지옥의 갤럽)은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ée aux enfers)》의 2막 피날레에 나오는 곡이다.
이 글에서는 무엇보다 이 음악 자체를 한번 들어보고 계속 읽어 내려갈 필요가 있다.
도대체 그 '지옥의 선율'이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곡이라니.
이 곡이 ‘지옥의 음악’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시작부터 숨 가쁘게 빠르며, 마지막 음표가 울릴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지옥이라는 징벌의 개념이 이제는 수직적 '추락'이 아니라, 수평적 '가속'으로 재정의된 것처럼 펼쳐진다.
그뿐이 아니다. 이 지옥에서는 통곡 대신, 화려한 축제와 광란의 춤사위가 무대를 채운다.
본래 이 음악이 속한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오펜바흐의 거침없는 손길을 통해 신화의 엄숙한 서사적 무게는 해체되고 유쾌한 음악적 장치로 재배치되었다.
여기서 가장 도발적인 지점은 다름 아닌 '지옥' 그 자체의 묘사다.
서양 음악 전통에서 ‘지옥’과 같은 초월적, 공포적 이미지는 특정한 단일 음악 어법으로 고정되어 표현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양식에 따라 다양한 긴장 유발 기법을 통해 구성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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