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성의 방’ 안에 숨어든 불청객

그 침묵은 성격일까, 상처일까

byItz토퍼
"내향성의 재발견" 두 번째 이야기



저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숫기 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사실 일상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누구보다 활달하고 짓궂으며, 툭하면 싸움박질도 잘하는 장난기 가득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단지 생각이 많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아버지는 늘 호통을 치곤 하셨습니다. “남자 녀석이 왜 그리 계집애 같아!”라며 무심코 던지신 그 한마디. 어린 저에게는 고스란히 굴욕적인 상처로 남았고, 결국 제 성격마저 조금씩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의 저처럼 ‘내향성의 방’에 조용히 들어온 ‘수치심’을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기질인가, 혹은 상처인가



내향적인 이들은 흔히 자신을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말이 많지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에너지가 쉽게 방전되는 사람이라고. 그 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내향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기질이며,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 유형에 속하니까요. 결코 유별나거나 잘못된 성격이 아닙니다.


by BingAI

조금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뇌의 각성 수준이나 외부 자극에 대한 민감도,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 등 생물학적 토대 자체가 외향성과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 아픈 일이 있습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내향적인 분들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어딘가 미안하고 위축된 표정을 짓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너무 특이해서 그렇다거나 슬롯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변명하듯 덧붙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며 조심스레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합니다.


이 조심스러운 말들 속에는 단순한 자기소개 이상의 무언가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치심’입니다.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향성은 타고난 기질이지만, 내향성 안에 들어온 수치심은 결코 기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상처들이 마음속에 쌓이고 굳어져 버린 아픈 흔적일 뿐입니다.



내향성 자체는 중립입니다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내향성은 결코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닙니다.


조용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고, 깊은 사색을 즐기며, 소수의 관계 속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 삶의 방식. 이것은 누군가에 비해 열등하거나 모자란 모습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처음 내향성과 외향성의 개념을 제시했을 때도 그것은 가치 판단이 배제된 중립적인 구분이었습니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들은 깊은 집중력과 탁월한 경청 능력, 세심한 관찰력이라는 귀한 보석을 지닌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내향성 자체가 아니라, 외향적인 모습만을 일방적인 '정상'의 기준으로 삼는 거친 세상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내향적인 이들의 마음에는 아주 조금씩 수치심이라는 차가운 씨앗이 심기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깊은, 일상의 작은 상처들



내향인을 아프게 하는 수치심은 대개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 흩어져 있어 누구도 감히 상처라 부르지 않았던 사소한 순간들이 날카로운 종잇장처럼 마음을 베곤 합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번쩍 들 때, 머릿속에서 신중하게 답을 정리하느라 가만히 앉아 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툭 한마디를 던지곤 합니다.


“왜 너는 이렇게 조용하니? 너도 발표 좀 해봐.”


선생님도, 친구들도 이내 잊어버렸을 가벼운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에 새겨진 조그만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조용한 것은 고쳐야 할 행동이라는 인식, 말이 없는 사람은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밀한 거부의 순간들은 삶의 도처에서 반복됩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났을 때 날아오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는 눈총, 모임에서 조금 비껴서 앉아 있을 때 들려오는 “좀 활발하게 어울려봐”라는 채근, 깊고 소중한 관계를 아꼈을 뿐인데 날아드는 “너는 왜 친구가 그것밖에 없느냐”는 걱정들이 그렇습니다.


이 말들에 악의가 섞인 것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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