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하게 자라는 ‘색’다른 뿌리

얌마, 백대가리가 뭐꼬!

byItz토퍼
by QwenAI

중학교 2학년 시절,


“얌마, 니 할배 다됐네?”

아버지 친구인 이발사 아저씨의 한 마디.


이게 웬일인가. 내 머리칼에 흰색이 보인다니.

“정말이라예? 인자 중학생인데예.”


“진짜다. 니 누구 닮아서 흰머리가 이리 많노?

뒤통수가 하~얗다!”


그날부터 아저씨 말대로, 검정콩자반부터 검정깨, 검정콩만 죽으라 먹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먹은 콩만큼 많아지는, 흰머리 수와 별명.


백대가리, 백노(백발노인네), 백깔(한 성깔 하는 성격 때문에) 등등. 친구 녀석들이 모든 별명 앞에다 ‘백’ 자를 붙이기 시작한 거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여름날 논에서 풀 뽑듯이 그 녀석들 검은 머리를 다 뽑아버리고 싶었으니까.


“아~ 야속한 유전자여~!”




결국 30대 중반부터 어쩔 수 없이 염색을 시작했다. 미용실 가기가 창피해서 셀프로 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직접 한다. 색도 내가 선택, 농도도 내가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내 일은 무조건 내가 한다'는 성격 탓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염색 인생’,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안 해도 별 지장 없는데 이게 습관인지 의식인지 자꾸 하게 된다.


결국 이른 아침 면도를 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이랑 아침 인사라도 나누듯 고개를 숙여본다. 앞머리, 정수리 가장자리. “아~ 또 나왔다. 그것도 떼거지로.”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 어느새 하얗게 서리가. 일주일 전까지는 분명 양호한 편이었는데. 일주일만 더 버티자. 그렇게 미루다 가도 다시 한번 거울을 더 본다.


“할까?”

어쨌든 하루 이틀 지나면 하게 될 거다.

하지만 오늘은 패스다.




내가 염색을 하는 이유는 뭐 특별하게 있는 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습관이 됐다. 매달 혹은 눈 딱 감고 두 달에 한 번, 욕실 바닥에 신문지 깔고 혼자서 머리에 까만 물, 혹은 짙은 커피색 물을 들인다. 하지만 까맣게는 하지 않는다. 이제 내가 봐도 어색하니까. 거기다 이제는 또 다른 한 가지 이유가 늘었다. 무엇보다 딸 보배단지가 싫어한다.


한 번은 진한 커피색을 고른다는 것이 실수로 밤색을 택했는데, 머리를 감고나니 완전 참새 머리로 변해버렸다. 어쨌든 염색을 하면 얼굴이 조금은 피어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꼬맹이의 호칭이 달라지는 순간이 간혹 있다.(이전에)

“할배”에서 “아재”로. 그런데 지금은 희망사항일 뿐.


하나 안 하나, 몽땅 “할배”다.

그렇다고 주름을 펴는 다림질까지?

아서라, 그건 아니다.


솔직히 평생 사람들 앞에서 나만 떠드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외적인 인상을 꽤 신경 쓰는 편이다. 하지만 옷은 예외다. 나는 불편한 껍질을 거부하는 성격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내가 편하면 끝이다. 티셔츠에 청바지는 사시사철 모두 오케이니까. 그런데 머리와 피부, 그리고 수염은 어쩔 수 없이 깔끔함을 유지하게 되더라.


누군가는 항상 머리를 염색하는 나를 보고, "타인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이를 부정하는 것도, 흰머리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거울 속 나와 내 머릿속의 나 사이에 너무 큰 간극이 생기는 게 싫다.


딸의 명령도 있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고, 의욕도 있고, 뭔가 조금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니까. 머리가 허연 모습으로 거울을 보면, 영락없이 "다~ 됐네~"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염색은 그러니까, “아직”이라고 말하는 나의 아주 소박한 자기 선언 같은 것이다. "나는 아직 현재진행형이야"라고.


그래서 염색을 한다.

나를 위한 아주 작고 사적인 정비작업일 뿐.


by ChatGPT


그런데 가끔 그 반대편 사람들이 궁금하다.


흰머리를 그냥 두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 묘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의형제지간인 모 한의대 교장인 아우를 보면 그렇다. 자연스럽게 섞인 은빛 머리카락이 훈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만큼 살았고, 그게 어때서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


그 자연스러움과 자기 확신, 그 초연함.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크게 흔들리지 않는 그 단단함이 사실 좀 괜찮아 보인다. 내면이 충분히 두텁고, 굳이 외모로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같아서.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긴 할 거다. 번거로운 관리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사는 게 편해서. 사실 그것도 꽤 현명한 판단이다.


솔직히 염색도 번거롭다. 뿌리 자라는 속도는 왜 항상 중요한 날을 며칠 앞두고 최고조를 찍는지 모르겠다. 가장 많이 의식하는 게 바로 딸 보배단지 학교행사 혹은 문화교실 강의 등등이다. 그렇다고 당일 전 부랴부랴 염색을 하다 보면, 두피에 약이 묻은 채로 최소 20분은 멍 때리고 앉아 있어야 하고, 욕실 바닥에 튄 염색약도 기어 다니며 박박 닦아야 한다. “귀찮다.”


그런 날이면 잠깐, 자연파의 삶이 더욱 간절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그 홀가분함. 뿌리 걱정 없이, 욕실 청소 없이, 거울을 볼 때마다 새로운 용기를 얻는 그 사람들의 마음. 그들은 어쩌면 나보다 훨씬 오래전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끝낸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연습이 덜 된 것 같고.


하지만 말만 이러지 결국 나는 또 드럭스토어에서 염색약을 집어 든다.


생각해 보면 흰머리 앞에서의 선택은 꽤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염색을 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붙들고 싶은 사람이다.


조금 더 의욕적으로, 조금 더 현재의 나답게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 나처럼.


그리고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때로는 지는 게 싫고, 무언가를 계속 통제하고 싶어 하는 성격. 물론 그게 꼭 나쁜 성격은 아니다. 그 에너지가 삶을 앞으로 밀고 가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염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화해한 사람일 거다. 아우님처럼.


흰머리 하나하나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여기는 사람. 그 자부심과 자기 수용의 깊이는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부럽다.


어찌하였던, 둘 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방향이 다를 뿐이지. 나는 아직 까만 쪽의 용기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신문지를 깔고, 장갑을 끼고, 혼자 뒤통수까지 꼼꼼히 바르다가 손목이 뻐근해지는 월례행사.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있지 않겠나.


거창한 자기 관리가 아니어도 된다. 그냥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내 마음에 들면 족하지 않나. 흰머리가 다시 자라면, 또 하면 되니까. 까짓것.


오늘도 정수리를 확인하며,

염색약이 아직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


그런데 요즘은 염색으로도 해결 안 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정수리에 웬 헬기장 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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