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왜 서로의 글에 침묵할까

— 댓글창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

by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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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심 플랫폼에는 이상한 역설이 하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말보다 글만 많은 사람들인지 정작 서로의 글 앞에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도 포함.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글쓰기에 최적화된 독자층이 어디 있겠나. 문장을 다듬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댓글도 얼마나 섬세하고 따뜻할까, 기대가 넘치지 않는가.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플랫폼의 댓글창은 유난히 조용하다. 좋아요 숫자는 제법 붙어도, 댓글창은 다른 블로그나 플랫폼에 비하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왜 그럴까.



미술관에서는 아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이 플랫폼을 처음 열었을 때의 인상을 떠올려 보자. 여백이 넉넉하고, 폰트는 단정하고, 글이 마치 잡지 한 페이지처럼 배치되어 있다. 광고 배너가 난무하는 블로그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딘가 조용하고 정제된 공간의 느낌.


나는 그 분위기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곳은 블로그보다 미술관에 가깝게 설계된 플랫폼이다.”


미술관의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을 보라. 아무도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그림 앞에서 "이거 정말 잘 그렸다!"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조용히 보고, 조용히 느끼고, 조용히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감동받았어도 조용히 감동받는다.


이곳의 댓글창이 조용한 첫 번째 이유다.


플랫폼 자체가 독자에게 "여기서는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 예의입니다"라는 무언의 드레스코드를 요구하고 있는 느낌. 그 분위기에 눌려 댓글창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방금 마음에 닿았던 그 감동을 감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다.


또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 말하려니, 조용한 미술관에서 나 혼자 너무 수다를 떠는 것 같아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나만? 괜히 눈치 보인다.



모두가 작가라는 것의 이면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플랫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여기서는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작가'라는 칭호가 붙는다. 아무나가 아니라 심사를 통과해야 작가가 되는 구조이니, 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격증이다.


그런데 이 '작가'라는 칭호가 아이러니하게도 댓글을 막는다.


혹시 그런 댓글을 받거나 본 적이 있는가. 마치 글을 쓰듯이 아주 정갈하게 쓴 댓글. 댓글이라고 하기엔 너무 격식과 예를 갖춘 것 같은 분위기. 답글 달기도 부담스러워지는 너무 격식을 차린 댓글.


독자가 작가의 글에 댓글을 다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작가가 작가의 글에 댓글을 다는 건 조금 다른 무게감이 있다. 같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 댓글도 어딘가 잘 쓰여야 할 것 같은 압박.


"잘 읽었어요" 세 글자가 갑자기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긴 댓글을 정성껏 쓰자니, 그것도 부담이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다정한 눈빛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스몰댓글’이 꽤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좋아요 하나를 누르고 조용히 ‘다음 글’로 사라진다.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일종의 예우가 되는 공간. 작가가 작가에게 보내는 가장 조심스러운 인사가 소리 없는 공감 버튼 하나인 공간. 댓글창이 조용한 두 번째 이유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댓글도 초안부터 먼저



이건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댓글 달기가 더 어렵다.


글쓰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기 문장에 예민하니까.


댓글창에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를 치다가 갑자기 멈춘다. ‘좋은 글’이라는 표현이 너무 식상하지 않나 싶어 지우고 다시 쓴다. ‘감사해요’는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감사한 걸까 고민하다 또 지운다. 커서만 깜빡이던 창을 결국 조용히 닫아버린다.


블로그 이웃들이 거침없이 "ㅋㅋ 공감해요!"를 날리는 동안, 이 플랫폼의 작가들은 댓글 초안을 세 번 지우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다. 가장 말을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이, 정작 남의 글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리다니. 언어를 너무 잘 알게 된 나머지, 언어를 가장 조심스럽게 쓰게 된 사람들. 이것이 댓글창이 조용한 세 번째 이유다.



모두가 말하고 싶은 공간에서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제 가장 불편한 진실을 꺼낼 차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된 욕망,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다.


“읽히고 싶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플랫폼에 글을 올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니까.

그런데 모두가 말하고 싶은 공간에서는, 자연히 듣는 사람이 부족해진다.


한 명의 강연자와 백 명의 청중이 있는 곳에서는 뜨거운 호응과 질문이 오간다. 내가 문화교실에 가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백 명의 강연자가 모여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실을 상상해 보라. 그곳에선 아무도 타인의 발표를 온전히 듣지 않는다.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극적으로 필기도 하지만, 정작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원고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이 플랫폼은 어쩌면 원래 그런 공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 글을 구상하고 있고, 당신도 당신의 다음 글을 구상하고 있다. 서로의 글을 읽기는 하지만, 온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창문 너머로 잠시 들여다보는 데 가깝다. 그러니 댓글이 잘 달리지 않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쇼윈도 앞에서 한참 서성인다고 해서, 반드시 그 물건을 사게 되는 건 아니듯이.



그렇다면 플랫폼의 침묵은 나쁜 것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블로그의 왁자지껄한 댓글창이 시장통이라면, 이곳의 조용한 댓글창은 새벽의 독서실에 가깝다.


모두 자기 바카라을 읽고 있지만, 그 공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연대감이 생기는 곳. 소리는 없어도 온도는 있는 공간이다.


좋아요 하나가 댓글 열 줄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순간도 분명 있다. 아무 말 없이 눌린 공감 버튼이 "나도 이런 밤이 있었어요"를 대신하는 순간. 그 침묵이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이유는, 같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이해하는 어떤 감각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이야기군’, ‘나랑 다르군’하면서 그냥 조용히 나가는 이도 있다. 물론 예의상 좋아요 하나 정도는 날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기주장이라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쓰고 읽히길 원하는지 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가 아쉽다면, 그 침묵이 너무 자주 오해를 만든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반응이 없으니 '아무도 읽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읽은 사람은 '좋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어'라고 생각하며 각자의 화면을 닫는다.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아쉽다면, 바로 이게 아쉽다. 같은 글을 쓰고 올리는 입장에서 조금은 따뜻하면 어떨까.




그래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오늘 누군가의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플랫폼의 작가를 의식해서 완벽한 댓글을 쓰려고 하지 말자. 그러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그냥 그 순간 떠오른 말, 가장 날것의 첫 문장 하나만 쳐도 된다. 다듬지 않아도 된다. 퇴고하지 않아도 된다.


댓글창에서만큼은 '작가'의 외투를 벗어두고, 순수한 '독자'로 돌아가면 어떨까.


독자가 없는 공간에 아무리 글을 올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작가’가 글을 쓸 때는 작가로서,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 때는 그냥 순수한 ‘독자’로 돌아가면 어떨까.


나는 그게 바로 ‘우리’를 높이고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내뱉고 있는 작년 이맘때와 같은 한숨이 내년 이맘때도 이어질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고 기대도 못할 ‘작가’의 독자적 댓글. 왜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응원을 모두가 잊고 지낼까.


완벽하게 다듬어진 작가의 문장보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살아 숨 쉬는 독자의 날것 그대로의 고백이 글쓴이의 체감 온도를 훨씬 더 뜨겁게 데워줄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 맞닿을 수 있는 온기니까.


이것으로 댓글창 시리즈를 마친다.


온도계를 달고, 체감온도를 재고, 침묵의 온도까지 들여다봤으니. 남은 건 각자 전송 버튼 앞에서의 1초뿐이다.


“오늘 당신의 댓글창은 몇 °C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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