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멋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질서
애매한 평가, ‘제 멋에 산다’
개성이 강하다는 것. 그런데 사람들은 때로 그것을 두고 ‘제 멋에 산다’는 식의, 어딘가 미묘하게 걸리는 평가를 덧붙이곤 한다.
마치 칭찬인지 핀잔인지 끝내 분간되지 않는 말처럼. 그래서 이걸 듣는 순간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미소 한번 날리면 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 값싼 ‘멋’을 위해 그렇게 살아온 적은 없다. 물론 고집이 자라 개성이 되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멋’이라는 이름까지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을까.
도대체 그 ‘멋’은 뭘까?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멋’은 단순한 스타일이나 취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과 좋아하는 방식을 타인의 시선보다 앞세워 살아가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표현이라도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다움’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제멋대로’ 일뿐이다.
결국 ‘멋’이라는 말은 하나의 가치라기보다, 그 기준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듣고 있는 이 ‘멋대로’라는 말 역시, 지금쯤은 한 번쯤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더 늙어서 돌덩이처럼 굳어버리기 전에.
슬롯의 궤적 밖에 선 사람들
우리는 종종 슬롯적 보편성이라는 안온한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이들을 마주한다. 그들의 발걸음은 때로 대중이 지향하는 방향과 정반대이거나, 도무지 박자가 맞지 않는 엇박자로 흐르기도 한다.
서른이 된 그녀. 어느 날, 대기업의 안정적인 직바카라을 내려놓고 자신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주변은 난리였다. 부모는 끊임없이 설득했고, 친구들은 "언제쯤 현실적으로 돌아올 거냐"는 뉘앙스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매달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이 정말 써야 할 문장들이 있다는 확신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당장 밥을 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사십 대의 그, 모두가 지향하는 서울의 아파트를 포기하고 시골에 작은 집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실패한 도시인'으로 봤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곳에서 직접 심은 채소의 흙내음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그들이 몇십 년을 벌어도 얻지 못할 뭔가였다. 외로움은 있었지만, 위선은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거절했다. 상대는 좋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궤적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의 기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의 선택이 어쩌면 "옳은"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무언가였다.
다시 던져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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