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를 따라 9,600km의 길에서 발견한 ‘나다움’
어린 시절,
저 넓은 바다를 건너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던 꼬맹이.
그리고 지금, 세상을 품에 안은 채
그때의 꿈 위를 달리고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세계로 나가기 위해 국가 간의 여행을 떠나는 방법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하늘을 가르는 항공, 파도를 넘는 해양, 그리고 대지를 밟는 육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우리에게 '육로 국경'은 교과서 속의 개념일 뿐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이 막힌 우리는, 매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이 당연한 출입국 절차라 여기지만 실은 섬나라 사람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결국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은 단연 비행기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는 것, 무언가 생각나는 게 없는가?
그렇다. 이는 마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마지막 장의 범인을 확인하는 추리 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륙과 착륙 사이, 우리는 '이동'이라는 서사의 가장 중요한 몸통을 통째로 뜯겨 나간 채 결말에 도착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게 되지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과정에 숨겨진 복선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구름 아래로 영원히 생략된다. 결말만 아는 이야기는 빠르고 편리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여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이 생략된 과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로막힌 북쪽의 벽이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여행자의 정신이다.
그래서 나는 대륙으로 건너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미 끝없이 넓은 중국 땅을 시골 마을 구석까지 거의 다 돌아본 터였다. 이제는 동남아와 연결된 윈난성 쿤밍에서 출발해 말레이반도의 끝, 싱가포르에 이르는 약 4,800km의 육로 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무려 9,600km,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여정이다.
그것은 생략된 페이지들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다시 이어 붙여 나가는 작업이며, 지도가 그어놓은 선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이야기의 개연성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경계 위에서 마주하는 '살아 있는' 세상
이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경계의 모호함'이라는 복선을 즐기는 데 있다.
중국 윈난성 쿤밍의 선선한 고원지대를 떠나 장거리 국제버스가 모한(Mohan)과 보텐(Boten)의 국경에 다다를 때,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국경이란 단지 서류상의 도장 한 번으로 결정되는 날카로운 단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피부색이 찻물의 농도처럼 조금씩 짙어지고, 지붕의 기울기가 비의 양에 맞춰 완만해지며, 식탁 위 향신료의 냄새가 옅은 후추 향에서 짙은 고수와 코코넛 향으로 농익어가는 지극히 물리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다.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늘어진 빨랫줄 같은 좁은 길을 달려보라. 낡은 버스의 덜컹거림 속에서 창밖을 보면 라오스의 원시적인 정글이 나타나고, 다시 기차의 매끄러운 궤도를 따라 태국의 황금빛 사원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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