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에 스며들고 말다니
아직 어둠이 하루를 묵직하게 눌러 앉히고 있던 새벽.
말라카 해협의 파도 소리가 섬의 경계를 넘나들 때, 나는 페낭에 도착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조지 타운의 낡은 건물들이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던 느린 오후.
햇빛이 지나치게 뜨거워 시야마저 부드럽게 번져가던 그 비현실적인 시간 속에, 그녀는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기억과는 달랐다.
강인함보다는 차라리 애틋한 연약함에 가까웠다.
오래전, 날카로운 감각으로 나를 깨우고 쓰디쓴 여운으로 하루의 끝을 서둘러 매듭짓던 그 차가운 여인이 아니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저 견디기 힘든 씁쓸함만을 남긴 채, 서로를 등졌던 기억뿐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이제는 내 곁에 가만히 다가와서 아무 말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내 거친 숨을 고요히 어루만져 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뒤늦은 고백처럼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분명 뜨겁고 분주한 땅이었으나, 오늘의 나를 마주하기까지 그녀가 견뎌온 시간은 결코 조급하지 않았음을.
그녀는 열대의 맹렬한 불길 속에서도 스스로를 태워 재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 따스하고도 아련한 열기 속에 자신을 오롯이 맡긴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숙해 가는 법을 택했다.
버터처럼 매끄러운 온기를 머금으면서도 자신의 본질을 쉽게 허물어뜨리지 않는, 그런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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