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왕'자가 있으셔!

건강검진 에피소드

by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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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왕'자가 있으셔!!!"

"어마 '왕'자가????? 대단한데!"



10년을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서의 최고 복지는 바로 건강검진이다.

그저 회사 건강검진이라고 하면 나라에서 하는 가장 기초적인 건강검진이 아니라 제법 비용을 내고서야 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이다.

위 내시경과 대장내시경 및 심장 초음파, 뇌, 요추, 경추 등의 CT 중에서 하나 선택하거나 골밀도, 혈중 미네랄검사등을 선택할 수 있어서 우리는 매년 하나씩 바꾸어 가면서 검사를 받고 있다.


올해는 대장 내시경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남편과 나는 검진일 전날부터 금식을 하며 준비를 했다.

대장 내시경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검사보다 그 전날이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양과 물을 짧은 시간 내에 마셔야 하고, 잠시 뒤면 화장실과 나는 한 몸이 된다.


처음 시작은 배가 싸르르 아프면서 시작이 되고, 대략 약물을 먹고 난 후 30분 여가 지나면 시작된다.

남편은 나보다 좀 더 늦게 시작되어 그런지, 때때로 완벽하게 제거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 검사에서는 둘 다 검사 안내문에 나온 '바람직한 상태'까지 도달했고, 병원까지 차가 안 막히기를 바랐다. 수면 내시경 검사가 있는 날은 자동차는 가져오지 말라고 했지만, 오후 일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이동했다. 우리는 차 안에서 가는 동안, 대장 내시경이 끝나고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를 하면서 갔기에 차가 밀려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 끝나고 뭐 먹을까?"


"나는 초파랑 꼭 먹고 싶은 게 있는데, 검진센터에서 가까워!

생선가스인데 정말, 생선가스가 눅눅하고 비리다는 선입견을 사라지게 해 준 정말 찐 맛집이야!"






드디어, 건강검진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는 차가 밀려서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그 시간대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검사가 다 끝난 후 남편과 먹을 맛집에 기분이 설레고 있었다.


마지막 검사인 위, 대장내시경을 남기고 검사하는 곳으로 가니 이미 남편은 검사 중이었다.


'그래, 생각보다 검사가 빨리 끝났으니, 나와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늘 그렇듯이 수면내시경은 누워서 주사를 놓는 것을 보고, 수면마취제를 놓는 것까지 보고 숫자를 세려는데 잠이 들었다.


이제까지는 한번 도 검사 도중에 깨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중간에 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뭐라고 내가 말한 것 같은데.....'


뭐라 말한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다만 검사 중간에 깬 것 같았고, 이제 다 되었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 다시 잠이 든 것 같았다.

여하튼 나는 비몽사몽간에 잠이 깨었고, 잠시 좀 더 누워 있다가 괜찮아진 것 같아서 선생님을 부르고 나왔다.


준비하고 나서는데, 대장에서 조직검사를 하나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조직검사를 하고 뭔가를 하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서 내가 깬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접수처로 가서 남편을 찾았다.


분명 나보다 더 빨리 시작했으니,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만,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0여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나 용종제거술을 했데, 그런데 좀 큰 것이라 내일까지 흰 죽만 먹어야 한데."


아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남편과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했는데, 내일까지 흰 죽이라니....

그보다 얼마나 큰 용종이라 그런 것인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나보다 더 걱정하고 있을 남편을 위로하고자 나는 말을 꺼냈다.


"나, 오늘 검사하다가 깬 것 같아!"


"나는 검사 중간부터 깼어.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어.

그런데, 아마 용종 제거를 하고 난 그 쯔음부터 깬 것 같은데 말이야.

다시 호수 같은 것을 넣고 있는 중에 내가 깬 것 같아.

나보고 자꾸 배에 힘을 빼라는데, 그게 되냐고,

똥꼬에 호수를 넣으니 아파서 힘이 들어가는데 자꾸 배에 힘을 빼라고 하니..."


"그런데 옆에 계신 남자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리는 거야.

'이 분, 배에 '왕'자가 있으신데요!!'


그러자 옆에 여자 선생님이 배에 힘을 가득 줘서 그런 거 아니냐 말씀하셨는데,

그분이 또 말했어.

'이 분, 배에 힘을 주니 자꾸 '왕'자가 나타나요!'

나는 검사 중간에 깨서 너무 아프기도 하고 그런데 자꾸 내 배에 왕자가 있다고 하니 너무 웃긴 거야.

그때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는지, 검사하는 호수가 안으로 들어가서 검사를 마무리하고 끝내고 나온 거야."


웃으면서 듣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였다.

마취가 깬 상태에서 그 아픔을 생으로 느꼈을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고,

용종을 떼느라 또 힘들었을 테니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둘만의 맛집데이트가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사실 조금 아쉬웠다.


사실 남편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생선가스를 함께 먹기를 고대하고 있었을지 말이다. 그래서 실망했을 나를 웃기려고 남편은 조금은 쑥스러운 이 말을 꺼내며 웃기게 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면서 대신 우리는 맛있는 생선가스는 먹지 못했고, 대신 남편은 흰 죽을 먹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남편 배의 왕자 이야기로 계속 웃을 수 있었다.


남편 배에 정말 '왕'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진짜 희미하게 선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검사 도중 깬 남편이 긴장하고 너무 아플까 봐


"힘 빼세요."

"움직이시면 안돼요!"


라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이 분 배에 '왕'자가 있으신데요!'라고 엉뚱한 말을 건네면서 남편의 주위를 다른 데로 돌리며 검사를 마치게 해 주신 그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싶다.

그 순간 호수가 들어가서 10여분을 낑낑댔다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생선가스는 나중에 또 먹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용종을 제법 큰 것을 떼어서 걱정이 가득할 남편에게 이런 뜻밖의 웃을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재치가 넘치는 선생님,

남편 배에 '왕'자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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