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괜찮아질것 같았어.

아들,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

by초마



"누나, 열이 몇 도면 학교에 안 가?"


"열난다고 학교 안 가는 건 없어! 약 먹고 가는 거지!"


초등 6학년인 첫째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체온계를 꺼내드는 동생에게 툭 하고 던지는 말이다.

어젯밤까지는 아무 일 없이 잠든 둘째였는데, 새벽즈음 나의 품으로 파고드는 모양새가 무언가 컨디션이 안 좋다는 징조라는 것을 느꼈다.

새벽 글쓰기를 하려고 알람을 맞추어 두었지만, 둘째가 자꾸 깨면서 가지 말라고 하는 통에 그냥 함께 누워있다가 부랴부랴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초콩이 열한 번 재볼까?"


체온계를 찾아서 열을 재고 나니, 나는 또 내 눈을 의심하면서 나도 모르게 망설여졌다.


아이가 아픈데, 망설일게 무엇이 있나 싶지만, 회사에 휴가를 내기에는 둘째의 상태가 조금 미약했다.


"초콩아, 38도가 조금 안되는데 일단 해열제 먹고 학교 가자!"


"엄마, 나 오늘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쉬고 싶어....."


"그럼 초콩이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아니, 그럼 나 학교에 갈래!"


그렇게 둘째는 나와 같이 집을 나서서 주차장 앞에서 헤어졌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둘째였지만 오늘 아침은 힘이 쭉 빠진 모습이라 마음이 쓰였다.








"혹시 이ㅇㅇ 어머님 되시나요? 여기는 A초등학교 보건실이에요.

ㅇㅇ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보건실에 왔는데, 열을 재보니 38도 정도 되어서 해열제를 먹어야 하나 해서요."


오후에 고객사와 미팅을 준비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상담기간이 아닌 때에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부터 쿵 하고 내려앉는다.

특히나 첫마디가 보건실이라고 하니 더더욱 말이다.


다행히 선생님의 어조는 그렇게 심각한 것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것도 열이 다시 난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선생님께는 일단 해열제를 먹여주고 나중에 하교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조금 일찍 미팅을 끝내고 나서야 아이와 병원 접수 마감시간 전에 진료를 겨우 볼 수 있었다.

둘째는 집 근처 우리 집 단골병원인 이비인후과에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배가 아프다는 아이의 말에 우선 소아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이비인후과 옆 건물에 새로 생긴 소아청소년과에 들어섰다.


오는 길에 다급하게 병원의 정보를 알아보려고 맘카페에 들어가서 정보를 보았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접수를 받냐 안 받냐이기 때문에 이도저도 따질 상황이 안되었다.


다행히 병원 안에는 대기 환자가 많지 않아서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도 마지막으로 아이의 진료 접수를 해 주셨다.


"아이가 열이 나는 것이 당연하네요! 이렇게 목이 부어 있는 것 보이시죠?

코도 많이 부어 있고, 다행히 중이염까지 온 것은 아니네요...

열이 나는 것은 목 때문에 열이 나는 것 같아요. 머리도 그래서 아픈 것 같고..

배가 아픈 건 아마 열이 나고 해서 소화가 잘 안돼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요즘 독감이 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이 계속 나면 추가 검사를 해봐야 하니 2일 정도 후에 한번 다시 보시죠!"


선생님께서는 목이 많이 부어서 열이 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불과 몇 시간 사이인데 아이는 얼굴이 핼쑥해져 있는 것 같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일단, 빨리 집에 가서 약을 먹고 한잠 재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목이 부어서 많이 아팠을 것이란 선생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초콩아, 목 아픈데 왜 엄마에게는 말 안 했어?"


"응, 그냥 참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어!"


목이 아프다고 했으면, 늘 갔던 이비인후과에 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전 진료기록도 있고, 초콩이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선생님들이니 척보니 척인 병원에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는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참으면, 참아질 것 같았어..'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이제 초등 2학년인 아이인데, 참으면 참아진다는 말이 너무나 속상했다.

이제까지 나와 남편의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생각하니 더더욱 그랬다.


"엄마 아빠는 회사에서 자꾸 휴가를 낼 수 없어! 그러니까, 초콩이 몸은 네가 잘 챙겨야 해!"


"그러니까 요즘같이 감기 잘 걸리는데 왜 자꾸 찬 것만 먹어! 그러니까 감기 걸리는 거 아냐!"


"자꾸 불량식품 같은 이상한 것만 먹으니 배가 아픈 거 아냐?"


사실 지난겨울부터 첫째와 둘째가 연이어 A형 독감과 B형 독감에 차례로 걸리는 바람에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었었다. 회사에는 회사대로 눈치가 보였고, 독감으로 힘든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나도 몸이 지치고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이 자꾸 생각나서 아이들이 아프다고만 하면 못된 말이 내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남편에게 몸이 힘들거나 할 때


"건강관리를 자기가 잘 알아서 해야지! 자꾸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


이런 말보다는,


"아이고, 괜찮아? 아파서 힘들어서 어떻게 해! 오늘은 일찍 푹 자!"


이런 말을 듣기를 늘 바라왔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아파서 괜찮냐, 다른데 아픈 데는 없냐는 말 보다 엄마 회사 가야 하는데 왜 자꾸 아프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아이들에게 한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한 잠 자고 난 아이는 컨디션이 거의 회복 되어 있었고, 다시 원래의 웃음을 찾는 듯이 보였다.


"초콩이 괜찮아? 얼른 약 먹고 낫자! 엄마가 미역죽 해 뒀어!"


그 옛날 내가 아프면 엄마는 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죽을 해주셨다. 그 죽을 먹으면 한 숟가락도 못 뜰 것 같다가도 어느새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힘이 나는 엄마의 마법의 계란죽이다.

첫째인 초롱이가 아플 때에 처음 도전해 본 계란죽은, 요리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내가 만들어 본 음식 중에서 초롱이가 좋은 점수를 준 몇개 안되는 음식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계란죽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초콩이가 좋아하는 미역국으로 미역죽을 끓여서 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엄마의 정성과 마음을 한스푼 더 넣고 싶었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과 함꼐 말이다.


미역죽을 한 숟가락 떠먹은 초콩이는 "엄마 맛있다!" 라고 말하며 씽긋 웃었다.


다행이다.

한 잠 자고 일어난 초콩이는 열도 내렸고, 아이 얼굴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내내 내 마음에 남아 있던 것은 아이의 열이 아니라 아이의 말이었다.


"참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어."


나는 아이에게 아프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말하라고 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지 말라고 눈으로 마음으로 더 많이 말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 확실하게 들었다.


"초콩아,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에게 다 이야개 해줘!"


'그리고 초콩아, 엄마는 회사보다 초콩이가 훨씬 더 소중하고 중요해! 그러니까 아프면 참지말고 꼭 이야기 해줘!'


오늘 끓인 미역죽에는 이 말을 더 많이 담아 넣었다.

초콩이에게 마음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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