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서늘해지면 어릴 적 집 안에서 철 따라 하던 일 가운데 두 가지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하나는 격자무늬 창호문에 붙여두었던 모기망을 걷어내고 새 창호지를 바르던 일이었다.
여름 내내 붙어있던 모기망이, 채송화 번지듯 격자창살 너머까지 기어오른 햇살에 날긋날긋 해졌다. 해진 구멍 두어 개는 미처 기울 새도 없었는지 그대로였다.
하얀 창호지를 팽팽하게 붙이고 나면 밀가루풀 냄새 가득한 집 안으로 드는 빛마저 새뜻해졌다. 문고리 둘레에는 국화나 코스모스 꽃잎을 하나씩 떼어 붙여 맵시를 내기도 했다. 어린 나는 한동안 그 흰 빛이 아까워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꽃잎이 숨어 있던 자리에 손때가 배지 않도록 조심했었다. 쓰고 남은 자투리 창호지를 차곡차곡 접어두었다가, 문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계절은 달력보다 이런 손일로 먼저 왔다. 여름을 걷어내고 가을을 붙이는 일이 집 안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계절에 맞춰 이불을 바꾸는 일이었다.
여름 이불을 갈무리하고 솜을 두툼하게 넣은 이불을 꺼낼 때면 어머니는 이불 홑청의 매무새를 다시 잡았다.
우리 집에는 다듬잇돌이 없었다.
명절이면 손님겪이가 많았고, 부엌살림에 욕심도 많았던 어머니는 동네에서도 그릇 많기로 손꼽힐 만큼 부엌 세간을 분에 넘치게 갖춰두었다. 이에 반해 모시나 삼베 같은 전통 옷감에는 별 욕심이 없었다. 잔손이 많이 가는 옷감보다는 손질하기 편한 합성섬유 옷이나 이불을 더 좋아했다. 그러니 우리 집 살림붙이 사이에 다듬잇돌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그럼에도 솜을 두툼하게 넣은 이불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 집 안에 찬기가 돌기 시작하면 그 이불을 꺼내고, 홑청을 빨고 말리고 다시 매만지는 일이 뒤따랐다. 묵은 솜을 솜틀집에 맡기고, 다듬이질할 거리가 생기면 어머니는 그것을 들고 옆집 할머니네로 갔다.
가을은 부지깽이도 덤빌 만큼 들일로 바쁜 나날이었다. 추수철이면 어머니는 아침 일찍 들로 나가 해거름에야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그런 때에 하필 이불 홑청까지 손질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에게는 곁일 하나가 더 보태지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이 좋았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집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몹시 엄마가 고프고 마려웠다.
옆집 할머니네 툇마루에 앉아 홑청을 다루는 어머니의 손맵시가 보였고, 다듬잇돌 위로 방망이가 내려앉는 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다듬이질 소리는 또랑또랑하고 신기했다. 두 개의 방망이를 번갈아 두드리면 가지런한 장단이 생겨났다.
나도 곧잘 흉내를 내보곤 했다. 행줏감으로 끊어 쓰던 무명천을 두툼하게 접어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를 잡았다. 그러나 어머니 손에서는 또르락또르락 고르게 이어지던 소리가 내 손에만 오면 금세 장단이 어그러지고 무명천은 다듬잇돌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다듬이 소리였는지, 아니면 그 소리가 들리는 동안 어머니가 멀리 들에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는지를.
묵은 소리를 다시 만났다.
설을 앞둔 매안 마을의 여인들은 옷을 빨고, 푸새하고, 다듬이질하고, 다시 홍두깨질까지 하며 옷을 손질한다. 최명희 선생은 그 과정을 설핏 지나치지 않는다. 다듬잇돌의 차고 매끄러운 감촉에서부터 박달나무 방망이가 만들어내는 장단, 두들김을 받아가며 옷감에 피어나는 무늬까지 오래 들여다본다.
한길사 2001년판 『혼불』 7권 14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빨랫보를 벗겨내고 깨끗한 다듬이 보자기에 옷감을 바꿔 싸서, 차고 매끄럽고 단단한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은 뒤 박달나무 방망이 두 개로, 딱 딱 딱 딱, 또드락 똑 딱, 또드락 또드락 딱 딱 두드리는 음향은, 설을 앞둔 매안 마을 섣달의 등잔불 아래 이 집 저 집 처마마다 밤 깊은 줄 모르고 울리었다.
이렇게 두드린 옷감은 다시 홍두깨에 편편하게 말아서 홍두깨틀에 얹고, 틀 아래 다듬잇돌을 받쳐 놓아 방망이질을 하노라면, 다듬잇돌 위에서 홍두깨는 방망이를 맞으며 저절로 조금씩 돌아가게 마련인데, 두들겨 맞은 방망이 자리마다 옷감에는 구름무늬, 물결무늬, 햇살 무늬, 이내 무늬, 아른아른 아련한 얼이 어리는 것이다.
맞으면서 제 살결에 피어나는 무늬.
그 무늬를 사람들은 얼이라 하였다.
내 시선을 오래 붙든 것은 마지막의 ‘얼’이었다. 옷감의 결이 두드림을 받아 드러난 흔적을 이르는 말인데, 내게는 귀에 선 낱말이었다.
옷감은 한 번도 아니고 숱하게 두드려 맞는다. 그런데 그 두들김 끝에 돋아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구름무늬이고 물결무늬이며 햇살 무늬다. 최명희 선생은 그것을 ‘얼’이라고 부른다.
맞으면서 제 살결에 피어나는 무늬.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도 아름다운 표현인가.
『혼불』의 이 대목을 읽고 있으면 다듬이질은 더 이상 옷감을 반듯하게 만드는 집안 손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섣달밤 이 집 저 집 처마 아래에서 잇대어 울리던 방망이 소리는 온 마을이 설을 맞는 소리가 되고, 그 소리 뒤에는 한 벌의 옷을 반듯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오래 들인 여인들의 손품이 놓인다.
사람들 눈에는 설날 아침 곱게 차려입은 옷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옷 한 벌에는 빨고 말리고 풀 먹이고 두드린 품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나는 ‘얼’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았다.
사람도 저마다 건너온 날들만큼 다른 결을 품고 산다. 같은 일을 겪어도 남는 무늬는 같지 않다. 누구에게는 상처로, 누구에게는 기억으로, 또 누구에게는 삶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남는다.
‘얼’이라는 말을 오래 들여다보니, 결국 사람마다 제 몫의 삶결 하나씩은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듬이 소리를 글에 담은 작가는 최명희 선생만이 아니었다.
채만식 선생에게도 「다듬이」라는 짧은 수필이 있다.
채만식 선생의 글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혼불』이 다듬이질하는 손과 옷감의 결을 오래 들여다본다면, 채만식 선생은 무엇보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드락 딱딱 이어지는 장단을 귀뚜라미 소리와 견주기도 하고, 다듬이질의 부산스러운 소리를 붙잡아 특유의 능청과 익살을 보탠다.
같은 다듬이질인데도 한 사람은 그 속에서 ‘얼’을 보고, 한 사람은 장단과 해학을 듣는다.
두 작가가 모두 전북의 삶과 살림에 깊이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최명희 선생의 『혼불』에는 남원 일대의 오래된 풍속과 살림살이가 촘촘하게 되살아나고, 옥구(지금의 군산)에서 태어난 채만식 선생의 글에는 전북 사람들의 생활 감각과 말맛이 또 다른 결로 스며 있다.
채만식 선생이 다듬이 소리를 익살스럽게 받아들이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다. 내게는 그토록 흉내 내보고 싶었던 소리였는데 그 마음이 문장에 가볍고 유쾌하게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다듬이질 하는 것이 방정맞다니.
어머니에게는 손에 밴 일이었지만 나는 수없이 해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다. 지금 와 생각하니 어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그 리듬도 오랜 세월 손끝에 밴 솜씨였다.
최명희 선생은 다듬이질에서 옷감에 새겨지는 ‘얼’을 보았고, 채만식 선생은 그 방망이질에서 익살스러운 장단을 들었다.
내게 그 소리는 조금 달랐다.
오래전 옆집 툇마루에 앉아 있던 어머니를 불러오는 소리였다.
내가 갓 결혼했을 때만 해도 손님맞이 이불에는 호청을 씌워 썼다. 때가 앉으면 뜯어 빨고 다시 꿰매야 했다. 하지만 다듬이질까지 할 엄두는 내지 못했고 세탁은 이미 세탁기의 몫이었다. 이후 지퍼가 달린 이불 홑청이 나오면서 한결 손쉬워졌고, 지금은 그마저 버린 지 오래다. 호청을 따로 씌우지 않는 차렵이불이 일상이 되었다.
살림살이는 분명 가벼워졌다. 호청을 뜯어 빨고 풀을 먹이고, 옆집 다듬잇돌을 빌려 방망이질하던 풍경도 함께 사라졌다.
편리함은 많은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그 수고와 함께 계절을 몸으로 알아차리던 감각도 조금씩 사라졌다. 손일은 줄었지만 기억을 붙들어주던 소리와 손놀림도 함께 희미해졌다.
그런데 『혼불』의 몇 줄이 그 묵은 소리를 다시 깨웠다.
추수철이면 하루 종일 집에 없던 어머니가 그날은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다듬이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소리가 나는 동안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고 들뜬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딱또딱. 또드락 딱딱.
소리를 따라가니 옆집 툇마루에 앉아 있던 젊은 어머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