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을 읽다가 강모를 깨웠다

by라이테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점심 식사 후 마신 카페모카가 다른 날보다 더 진하고 달게 느껴져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농도를 낮추고 싶었으나 위로가 필요한 분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그 한 잔을 다 마시고 말았다.


바쁜 하루를 보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대문 사진으로 쓴 이웃 작가님의 글을 연거푸 다섯 편 읽고 나서는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밤은 까맣고 사위는 고요했다. 깨어 있는 기척이라고는 이따금 흘러가는 구름뿐이었다.

결국 『정본 백석 시집』을 꺼내 들었다.




나는 백석을 참 좋아한다.

그의 수려한 모습도 좋다. 검은 머리를 멋스럽게 빗어 넘기고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진 속 백석을 보고 있으면 백 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하다. 지금 어느 거리에 세워 놓아도 사람들이 한 번쯤 돌아볼 것 같은 얼굴이다.


그의 동료였던 시인 김기림은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가는 백석을 두고 이렇게 썼다.


“그가 지나가는 광화문은 잠시 식민지의 우울한 네거리에서 예술과 지적 교양이 넘쳐나는 낭만의 거리, 파리의 몽파르나스로 변하는 듯하다.”


식민지의 우울한 광화문이 한 청년의 등장으로 몽파르나스가 되었다니.

사진 속 백석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그 말이 그리 과장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말쑥한 양복과 검은 머리, 서구적인 풍모에 문학과 외국어까지 익힌 젊은 시인. 모던보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굴만 잘생긴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 깊은 밤까지 그를 불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외양과 달리 백석의 시에는 구수한 고향 말이 가득하다. 평안도 사투리와 오래된 토박이말, 고향 사람들과 음식, 집안 풍경이 시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살아난다.

그 간극이 좋다.

뜻을 다 알지 못하는 말인데도 입으로 몇 번 굴려 보면 오래전부터 들어 온 말처럼 정겹다. 내게도 어린 시절 어른들의 입에서 들었던 사투리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이 있어서인지, 먼 평안도의 말이 어느 순간 내 고향의 말처럼 가까워진다.


윤동주 시인이 『사슴』을 구하지 못해 빌린 시집을 손수 베껴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 권의 시집이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남의 바카라을 앞에 놓고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을까. 그 시절 백석이 문학청년들에게 어떤 시인이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백석의 시에는 사람이 많다. 일가친척이 모이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가난한 이웃과 늙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국수며 떡이며 낯선 북녘 음식도 수북하다.

그렇게 북적이는데도 읽고 나면 이상하게 쓸쓸하다.

사람들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딘가 혼자인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서일까.




그러다 보면 시에서 그의 생으로, 다시 그 곁을 지나간 여자들에게로 눈이 간다.

통영의 여인 박경련이 있다.

백석이 마음을 빼앗겨 먼 남쪽 통영까지 여러 번 찾아갔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박경련은 훗날 백석의 친구 신현중과 혼인했다.


그리고 자야가 있다. 김영한여사.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백석의 연애사 가운데 가장 오래 이야기되는 사랑이 되었다. 훗날 김영한은 자신이 일군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고, 그 자리에 지금의 길상사가 들어섰다. 젊은 날 백석을 사랑했던 자야의 흔적이 그렇게 성북동 한켠에 절집으로 남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을 때면 자연스레 자야를 떠올린다. 그렇다고 나타샤를 자야 한 사람이라고 못 박고 싶지는 않다. 나타샤는 어쩌면 가난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눈 깊은 산골로 달아나고 싶은 젊은 남자의 마음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백석에게는 부모가 정한 혼인도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혼인해야 했던 남자의 답답함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그런데 그 대목에 이르면 나는 자꾸 반대편을 보게 된다.


사랑을 주지 않을 남자와 혼인한 여자는 어땠을까.

떠나는 남자의 사연에는 시가 붙고 전설이 붙는다.

그러나 기다리거나 버려진 여자의 이야기는 좀처럼 길게 남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불쑥 『혼불』의 강모가 떠올랐다.

나는 시집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자고 있던 강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봐.

당신하고 닮은 남자가 여기 있어.


백석 옆에 강모를 세워 보았다.

둘은 첫눈에 보면 하나도 닮지 않았다.

백석이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경성의 모던보이라면, 『혼불』의 첫머리에서 만난 강모는 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을 입은 열다섯 살 신랑이다.


“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


몸가짐은 의젓하지만 체구는 자그마했다. 얼굴빛에는 분홍물이 돌고, 귀밑에서 볼을 타고 턱을 돌아 목으로 흘러내리는 여린 선에는 보송보송 복숭아털이 느껴진다. 돗자리 위에 놓인 두 손은 하얗고 나뭇잎처럼 조그맣다.

열다섯.

그 조그만 두 손에 벌써 한 집안의 대가 놓였다.

매안 이씨 종가의 종손.

아내 효원은 그렇게 강모에게 왔다.


강모가 사랑해서 고른 여자가 아니었다. 열다섯 소년에게 혼인이란 가문이 정해 놓은 자리에 들어앉는 일이였다.

시간이 흘러 강모는 전주로 나가 공부했다. 신학문을 배우고 종가의 담장 밖 세상을 알수록 자신에게 이미 정해진 삶은 답답했을 것이다.

그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종손이라는 자리만이 아니었다. 양반과 노비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갈라놓고 태어난 신분에 따라 삶을 미리 정해 버리는 낡은 질서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강실이 있었다.

강모의 사촌 여동생.

어려서부터 가까이 자랐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둘은 끝내 상피의 금기를 넘고 몸까지 섞었다.

아내 효원은 종가에 있었다.


나는 『혼불』을 읽으며 강모에게 몇 번이나 화가 났다. 강실을 사랑하면서도 지켜 주지 못했고, 효원의 남편이면서 남편으로 살아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

분홍물이 도는 얼굴과 보송보송한 복숭아털, 하얗고 조그만 손을 먼저 보아 버린 탓일까.

한 여자의 남편이 되기에도, 한 집안의 종손이 되기에도 그 손은 너무 작았다.


강모는 낡은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이 속한 세계 자체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부조리에는 그렇게 예민했던 사람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에는 서툴렀다.

세상은 바꾸고 싶어 하면서도 제 삶의 매듭은 제대로 풀지 못했다.

그게 나는 참 서글프다.


강모는 끝내 아내 효원과 어린 아들, 강실을 뒤에 남겨 둔 채 일본인 기생 오유끼를 데리고 사촌형 강태와 만주로 떠난다.




백석을 읽으며 강모를 떠올린 것도 여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남자는 같은 시대의 공기를 마셨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자신이 태어난 자리 밖에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문을 사랑했고 시대에 아파했던 두 남자.

세상의 모순에는 예민했고 새로운 삶을 꿈꾸었지만, 정작 사랑 앞에서는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남긴 상처까지 시대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의 끝은 달랐다.

강모는 제 발로 만주를 향했다.

백석은 해방과 분단, 전쟁을 지나 북에 남았다.

떠나고 싶어 떠난 길과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은 다르다.

광화문을 몽파르나스로 바꾸었다던 모던보이, 윤동주 시인이 그의 시집 <사슴>을 베껴 읽을 만큼 문학청년들을 매혹했던 시인은 훗날 문단의 중심에서 멀어져 북녘에서 농사를 짓고 양을 돌보며 늙어 갔다.

젊은 백석과 노년의 백석을 한 사람으로 포개어 보면 한없이 서글퍼진다.

노년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 긴 북녘의 세월 곁에는 백석과 가장 오래 부부로 살아간 아내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자야에게 마음이 간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볼수록 마지막에는 북녘의 아내에게 눈길이 간다.

젊고 잘생긴 시인의 사랑을 받은 여자가 아니라, 늙고 지치고 세상에서 밀려난 백석을 곁에서 바라본 사람.

낡은 무명한복 같았던 여자. 화려한 사랑은 이야기로 오래 남지만 함께 늙어 가는 사랑은 대개 말수가 적다.


백석의 젊은 날에는 통영이 있었고 자야가 있었고, 눈 내리는 밤에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고 싶은 나타샤가 있었다.

그렇다면 늙은 날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얼어붙은 땅과 밥을 짓는 연기와 겨울을 날 땔감, 오래 써서 가장자리가 닳은 밥상 같은 것이 있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젊음을 사랑하는 일과 한 사람의 쇠락까지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서로 다른 무게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에 이르자 한밤중 내 방에 사람이 많아졌다.

박경련이 있고 자야가 있다.

이름보다 아내로 남은 여자들이 있고, 효원과 강실, 오유끼도 들어온다.

그들 사이에 백석과 강모를 다시 앉혀 본다.

한 남자는 말쑥한 양복을 입은 모던보이였고, 한 남자는 하얗고 나뭇잎처럼 조그만 손을 가진 열다섯의 소년이었다.

둘은 학문을 사랑했고 시대에 아파했다.

사랑도 했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제 마음까지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대를 아파했다고 해서 곁의 사람을 덜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을 순정한 사랑의 주인공으로만 바라볼 수도, 난봉꾼이라는 말 하나로 밀어낼 수도 없다.

미운데 가엾고, 가여운데 또 밉다.

그 모순 때문에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바카라장을 덮으려다 백석의 사진을 다시 본다.

잘생겼다. 참 잘생겼다.

한참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이 얼굴로 사람 속을 참 어지간히도 썩였겠구나.


옆에 앉혀 둔 강모에게도 눈길을 돌린다.

사모 아래 열다섯 소년의 얼굴에는 아직 분홍물이 돌고, 돗자리 위에는 하얗고 조그만 손이 얌전히 놓여 있다.

당신도 참.

뒷말은 하지 않는다.


하루 한 잔을 넘기지 않았는데, 나는 다시 로부스타 한 잔을 내린다.

이미 자정은 넘어갔다.

쓰디쓴 그들 앞에 진하고 까만 차를 만들었다.


백석도 강모도 아무 말이 없다.

창밖은 여전히 까맣고 사위는 고요하다.

처음에는 달달한 카페모카 한 잔 때문에 잠을 놓쳤는데, 이제는 두 남자와 그들 곁의 여자들 때문에 밤을 놓치고 있다.


강모를 다시 매안으로 돌려보낸다.

백석도 시집 속으로 돌려보낸다.

그런데 여자들은 좀처럼 따라가지 않는다.

자야와 통영의 여인, 이름보다 아내로 남은 여자들, 효원과 강실, 오유끼가 한동안 내 곁에 앉아 있다.

떠난 남자들의 사랑은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는데, 남겨진 여자들의 밤은 무엇이 되었을까.


로부스타는 조금씩 식어 가고

잠은 여전히 오지 않는다.


늙고 지치고 세상에서 밀려난 듯한 사람을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격이 내게는 없다.

낡은 무명한복 같은 여자가 될 수도 없다.


덮었던 『정본 백석 시집』을 다시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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