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넘은 사람들

by라이테

최명희 선생의 『혼불』 5권을 읽다가 좀처럼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한 대목이 있었다.


청암부인의 곳간에 손을 댄 부서방 이야기였다. 한 푼어치 가진 것 없는 데다 교활하지도 못하여 한없이 무르고 착해빠진 것만이 자랑인지 허물인지 모를 인물이었다.


부서방은 처음부터 남의 것을 탐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부쳐 먹을 만한 땅도 변변한 생업도 없었다. 몸뚱이 하나로 품을 팔아 여남은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지만, 손재주가 야물지 못해 일거리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어쩌다 품을 얻어도 하루 벌이로는 식구의 끼니를 잇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부서방의 아낙 곁에는 올망졸망 연년생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예닐곱이나 딸려 있었다. 오뉴월 염천에 어린것들이 저마다 어미에게 달라붙으면 아낙은 새를 쫓듯 이쪽저쪽으로 아이들을 몰아내며 턱에 찬 한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산달이 다가왔고 아낙은 또 아이를 낳았다.


검댕이 그을은 아궁이에서 끼치는 찬 바람은 저승의 냉기였다.
그리고 그 아궁이는 바로 저승의 아가리였다. 이제 그 찬 기운이 자칫 조금만 더 식으면 방안에 늘피하게 드러누운 새끼들과, 부황들린 몸으로 아이를 낳고는 미역국 한 대접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내리 굶어 기진한 어미와, 젖 안 나는 어미 곁에서 보채는 것도 힘에 겨워 가랑가랑 숨소리만 내고 있는 핏덩이가, 떼거리로 식은 송장이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미 여러 날 전에 불기 가신 아궁이는 한입에 이 식구들을 시커멓게 둘러 삼키려고 음험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혼불』5권 P. 264


막막한 광경이다.

일제 강점기, 어느 입 하나 넉넉히 먹이지 못하는 가장에게 또 하루가 온다.

부서방 제 배 하나였다면 굶어서라도 견뎠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내와 자식들이 함께 굶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가장의 마음은 어디까지 몰릴 수 있을까.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이 죄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들키면 어떤 수모와 벌을 받을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끝내 그의 발길은 청암부인의 곳간으로 향했다.

그가 탐낸 것은 금붙이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었다.

쌀이었다.

해산한 아내에게 먹일 밥 한 술, 갓난아이를 살릴 미음 한 그릇, 올망졸망한 어린것들의 빈 배를 단 하루라도 채워 줄 곡식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곳간에 쌓아 둔 재산이었지만 그날 부서방에게 쌀은 식구들의 목숨이었다.

"따라오너라."
"지고 갈 수 있겠느냐?"


청암부인은 도둑질이라는 행위만 보지 않았다.

어찌하여 이 사람이 남의 곳간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사정을 먼저 헤아렸다. 죄를 묻기에 앞서 사람의 처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를 벌하기는커녕 목이 메게 흰 쌀가마를 내어 주었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네 기운에 이것을 지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느니라."

라는 문장 위에 떨구고 말았다.


이 눈물은 청암부인이 부서방 앞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인 셈이다.

잘못을 잘못이라 하면서도 사람을 버리지 않는 마음.

곳간의 문을 더 굳게 잠그는 대신 그 안에 든 것을 내어 한 사람과 그 식구들을 살리는 마음.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도 몇 달 전 이른 봄에 다녀온 김제 아리랑문학마을이 떠올랐다.

혼불문학관과 청호저수지


이른 봄에 걸었던 마을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구한말에서 광복에 이르는 시대를 배경으로 김제에서 시작해 만주와 하와이 등으로 흩어진 조선인들의 삶과 수난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첫머리부터 김제의 농민들은 일제와 친일 세력의 수탈 속에서 땅과 삶의 터전을 잃어 간다.

마을에는 소설의 시대를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얼빈역을 비롯하여 주재소와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건물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너무도 고요했다.

주재소 앞을 서성인다고 누가 눈을 흘기는 것도 아니고, 면사무소 안을 들여다본다고 이름을 대라 하는 사람도 없다.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오히려 그 평온함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의 두려움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순사가 마을로 들어왔다는 말 한마디에 공연히 몸부터 움츠러들고, 면사무소에서 부른다는 소리에 무슨 일이 생겼나 가슴부터 철렁했을 사람들.

교과서에서 ‘식민 통치’라는 몇 글자로 배웠던 것이 그날은 건물의 모양을 하고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들 너머에는 김제의 넓은 들이 있었다.

참으로 넓은 땅이다.

눈이 닿는 데까지 논이 이어지고, 논은 다시 논을 밀어내며 지평선으로 간다. 곡식이 많이 나는 땅은 본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시대에는 풍요가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소출이 풍성할수록 더 탐냈고, 땅이 기름질수록 더 많이 빼앗았다.


『아리랑』의 사람들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가난했다.

제 손으로 땅을 갈고 모를 심고 벼를 베었지만, 그 노동의 열매를 온전히 제 식구들의 밥상에 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땅을 잃고 소작농으로 밀려나고, 끝내 고향에서도 살아갈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만주와 하와이 같은 먼 곳으로 흩어진다. 『아리랑』의 서사는 바로 그런 민중의 이산과 생존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그날은 그저 문학마을을 둘러보며 지나쳤던 풍경들이었다.

그런데 『혼불』에서 부서방의 빈 쌀독을 만나자, 그 이른 봄의 풍경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리랑』의 방영근이었다.

아리랑문학마을


곳간을 넘은 사람, 바다를 건넌 사람


방영근 역시 제 고향을 떠나 먼 나라에서 살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집안도 가난했다.

방영근은 김제의 가난한 소작농으로, 집안의 빚 때문에 스스로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없게 되고 결국 20원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가다시피 떠난다. 감골댁은 병든 남편의 약값으로 진 빚 때문에 맏아들 방영근을 보내야 했고, 방영근은 이후 하와이에서 다시 혹독한 노동 착취를 겪지만, 이후 한인회를 조직하며 농장주의 횡포에 맞선다.


『혼불』의 부서방과 『아리랑』의 방영근.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그런데 두 사람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면 묘하게 닮아 있다.

부서방은 굶주린 식구들을 두고 남의 곳간으로 갔다.

방영근은 빚에 짓눌린 가족을 두고 바다 건너 하와이로 갔다.

한 사람은 쌀을 구하기 위해 남의 집 문턱을 넘었고, 한 사람은 가족의 가난을 짊어진 채 고향의 문턱을 넘었다.

그들이 원해서 택한 길은 아니었다.

가난이 등을 떠밀었다.

먹고살 길이 있었다면 부서방이 남의 곳간에 숨어들었을까. 제 고향에서 일한 만큼 먹고 가족과 살아갈 수 있었다면 방영근이 머나먼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으로 향했을까.

가난은 사람의 배만 비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부터 하나씩 지웠다.

부서방에게서는 끝내 죄를 짓지 않고 버틸 길마저 앗아 갔다.

방영근에게서는 고향과 어머니 곁에서 제 삶을 이어갈 날들을 앗아 갔다.


결국 한 사람은 도둑이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곳간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가족을 뒤로한 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났다.

부서방에게 청암부인의 곳간이 마지막으로 남은 문이었다면, 방영근에게는 하와이로 향하는 배가 마지막 남은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밤중에 남몰래 넘어야 했던 문턱이었고,
하나는 어머니와 고향을 등지고 건너야 했던 바다였다.

소설 속 방영근의 집


같은 쌀, 다른 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청암부인의 곳간으로 돌아왔다.

청암부인은 자신의 곳간에 들어온 부서방에게 쌀을 내어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대, 개인의 곳간 밖에서는 훨씬 더 거대한 수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제는 조선의 땅과 곡식을 제국의 필요에 따라 거두어 갔다.

생각할수록 묘한 대비였다.


굶주린 부서방은 식구를 살리기 위해 남의 곳간에 손을 댔다.
그의 등 뒤에는 해산하고도 밥 한 술 먹지 못한 아내가 있었고, 울 힘조차 잃은 갓난아기와 굶주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의 곳간에 손을 댄 까닭은 전혀 달랐다.

부서방에게 쌀은 목숨이었다.
제국에게 쌀은 수탈할 물자였다.

한 사람은 없어서 훔쳤고, 제국은 이미 힘을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빼앗았다.
한 사람의 손을 곳간으로 밀어 넣은 것은 굶주림이었고, 한 제국의 손을 조선의 곳간으로 뻗게 한 것은 탐욕이었다.


더 선명한 대비는 청암부인의 손에서 드러난다.

부서방이 제 곳간에 손을 댔을 때 청암부인은 문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지 않았다. 오히려 곳간을 열어 쌀을 내어 주었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의 몫을 헤아려 제 것을 덜어 낸 것이다.

반대로 식민 권력은 제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댔다. 농민이 땀 흘려 일군 곡식과 삶의 터전까지 힘으로 거두어 갔다.

청암부인의 손은 자기 것을 덜어 사람을 살렸고,
제국의 손은 남의 것을 거두어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한쪽은 곳간을 열어 목숨을 살렸고,
다른 한쪽은 곳간을 비워 삶을 벼랑으로 몰았다.

내어 주는 손과 빼앗는 손.

같은 시대, 같은 쌀을 사이에 두고 두 손은 너무도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쌀 한 가마는 그저 곡식의 무게가 아니다.

봄날 논에 허리를 굽혀 심은 모이고, 여름 내내 살핀 물꼬이며, 가을볕 아래 낫을 대어 거둔 한 해의 수고다.

한 가족에게는 겨울을 날 양식이고, 어린 자식의 밥이며, 늙은 부모의 끼니다.

부서방에게 쌀은 해산한 아내와 아이들을 살리는 목숨줄이었다.

김제평야의 농민들에게도 쌀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제가 피땀 흘려 거둔 곡식이 제 밥상을 지나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땅마저 제 것이 아니게 되었다면 그들에게서 빼앗긴 것은 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활이었고,

고향이었고,

내일이었다.

혼불문학관 내 피규어 디오라마. (손부 효원 혼례/청암부인 장례)


‘수탈’이라는 두 글자 뒤에


학창 시절에는 시험지에 답을 적기 위해 ‘수탈’이라는 말을 많이 외웠다. 역사교과서 속 일제강점기는 몇 줄의 문장으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그 소설의 무대가 된 공간을 직접 걷고 나니 그 말들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수탈이라는 두 글자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빈 쌀독을 들여다보는 아버지가 있었고,
제 몫의 죽을 아이에게 밀어주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아무리 땅을 갈아도 제 것이 남지 않는 농부가 있었다.
그리고 끝내 먹고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방영근 같은 사람이 있었다.

역사바카라에서는 몇 줄로 지나가는 이주가 한 사람에게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익숙한 집과 들녘, 고향의 냄새를 뒤에 두고 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부서방의 도둑질도 마찬가지다.

‘도둑’이라는 두 글자만 남기면 그가 남의 곳간까지 가야 했던 서러운 밤은 사라진다. 해산하고 굶어 누운 아내도, 울 힘조차 없는 갓난아이도, 올망졸망 매달린 예닐곱 아이들도 함께 사라진다.

소설은 그렇게 몇 글자 뒤에 가려진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여 주었다.

나는 『혼불』을 읽다가 『아리랑』을 떠올렸고, 『아리랑』을 생각하다 다시 이른 봄에 걸었던 김제로 돌아갔다.

아리랑문학마을 전시실 내 벽면


광복이라는 평범한 하루


광복절이 가까워오고 있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다. 내게도 어느새 달력 속 익숙한 공휴일이 되었다.

그런데 염천에 읽은 바카라 한 권으로 ‘광복(光復)’이라는 두 글자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빛을 되찾았다는 말.

그 말 안에는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삶의 회복이 들어 있을까.

제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제 땅에서 농사짓는 것.
제 손으로 거둔 곡식을 제 식구와 나누어 먹는 것.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가고, 떠날지 남을지를 제 뜻으로 결정하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광복은 어쩌면 그런 평범한 하루를 되찾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른 봄 아리랑문학마을에서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주재소 앞을 걸었다. 면사무소 문을 들여다보고 정미소의 오래된 나무 냄새를 큼큼거리며 맡기도 했다. 누가 나를 부를까 겁낼 필요도, 어느 길로 가겠다고 허락을 구할 필요도, 몸에 지닌 쇠붙이를 뺏길 염려도 없었다.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때 이 땅에는 그 당연함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살았다.

『혼불』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 봄날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다 건너 하와이로 향하던 방영근의 뒷모습이 보였고, 새 새끼 주둥이보다 더 조그만 갓난아기의 노랗게 벌어진 입에 눈이 돌아가 광 모퉁이로 숨어드는 부서방도 보였다. 그리고 제 곳간의 문을 열어 굶주린 사람에게 쌀을 내어 주던 청암부인의 손도 보였다.

사람을 궁지로 몰아 원하지 않는 문턱을 넘게 만드는 세상이 있는가 하면,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길을 내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곳간’이라는 말속에서 오래 생각했다.

곳간에는 쌀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노동과 한 가족의 끼니, 다가올 겨울을 건너갈 희망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남의 곳간을 빼앗는 일은 그 사람의 내일까지 함께 빼앗는 일이고, 제 곳간을 열어 곡식을 내어 주는 일은 누군가에게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건네는 일이다.


『혼불』에서 시작된 생각은 몇 달 전의 김제 아리랑문학마을로 갔다가 『아리랑』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오늘로 돌아왔다.


곧 광복절이다.

이른 봄 황량하던 김제의 논마다 지금쯤 벼가 푸르게 차올랐을 것이다. 극심한 가뭄을 견뎌 낸 벼는 머지않아 이삭을 내밀고, 영글어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리고 타작한 곡식은 그것을 일군 사람의 뜻에 따라 마땅한 곳간으로 갈 것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거창한 말보다 그 평범한 삶을 오래 생각하고 싶다.

제 땅에서,
제 이름으로,
제 식구와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일.

누군가에게는 그 평범한 하루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빛’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