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꽃 오보록하게 필 무렵

환타가 뱀을 이긴 이야기

by라이테

꼰지발 선 꽃샘추위가 물러나자 헤싱헤싱하던 햇살이 선명해졌다. 봄볕에 목마른 목련은 잘 다듬은 붓끝처럼 꽃봉오리를 옹송그리고 속살을 아끼더니, 오래 머금은 숨을 내놓듯 꽃잎을 터뜨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꽃이 벙글면서 비로소 봄이 제자리를 잡았다.

보건소에 갈 일이 생겨 점심시간 끝자락을 떼어 내 걷기로 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출발했다. 대형마트 앞길을 건너 처음 보는 내리막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 끝에 이르자 걸음을 붙드는 풍경이 나타났다. 도심의 번화가 자락에 여섯 마지기쯤 되는 논이 남아 있었다. 잡풀이 무성한 빈터가 아니었다. 지난가을까지 벼를 길러 낸 논이었다. 마른 벼 밑동이 겨우내 눈비와 볕을 견디며 남아 있었다.

문득 그 논두렁에 자운영을 몇 포기 떠다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면 들판마다 오보록하게 피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꽃이었다.

마른 논을 바라보고 있으니 붉은 흙과 버무려졌던 어린 날의 기억이 한 토리 굴러나왔다.

흙담 아래 머위꽃을 따서 소꿉놀이를 준비했다. 송이가 크고 두툼해 사금파리 칼로 써는 손맛이 있었기에 단골 재료였다. 어른들에게 식물의 쓸모가 먹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면, 어린 우리에게는 소꿉놀이에 쓸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열무꽃이나 아까시꽃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은 더욱 귀한 대접을 받았다.

언니가 나부죽한 돌멩이로 아궁이를 만드는 동안, 나는 오목한 사금파리 조각에 쌀 한 줌을 올리고 물을 부었다. 동생은 화장실에 걸린 얇은 달력을 몇 장 뜯어 왔다. 성냥을 그어 종이에 불을 붙인 뒤 사금파리 솥 아래로 밀어 넣었다. 쌀 한 톨이라도 익혀 보려는 마음은 셋이 같았다.

그때 집 앞 골목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오빠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콜라를, 다른 손에는 오렌지 맛 환타를 들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난 줄 알아?”

“영문이 오빠 만났어? 오빠가 사 줬어?”

영문이 오빠는 삼촌처럼 나이가 많은 사촌이었다. 큰길에서 만나면 우리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과자도 없이 음료수만 사 주었을 리 없었다. 아무려나 내게 중요한 것은 음료수가 어디서 났느냐보다, 그것을 똑같이 나눠 주느냐였다.

공들여 불을 지피던 소꿉놀이는 금세 뒷전이 되었다. 오빠가 음료수병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거 과수원 아랫논에서 주워 왔어.”

과수원 쪽은 시내로 나가는 길목이었지만, 논 주변에는 음료수를 살 만한 곳이 없었다. 음료수를 논에서 주워 왔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너희들도 얼른 가 봐. 몇 병 안 남았을 거야.”

오빠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길은 과수원을 지나 얼마 못 가 왼편으로 급하게 휘어졌고, 그 아래로 탑천이 흘렀다. 음료수를 가득 실은 트럭이 굽은 길을 돌지 못하고 논으로 굴러떨어졌다고 했다. 트럭이 전복되면서 적재함의 상자가 터졌고, 음료수병이 논바닥으로 쏟아졌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병들 사이로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병을 하나씩 들고 달아났다.

오빠의 말을 듣자마자 언니가 말했다.

“막내는 오빠랑 있어. 언니들 후딱 갔다 올게.”

동생을 남겨 두고 사고가 난 논을 향해 달렸다. 우리 집은 하필 논 반대편에 있었다. 시작부터 불리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름길인 농수로 옆길을 택했다.

병 입구를 손으로 잡으면 한 손에 두 병씩은 너끈히 가져올 수 있겠다. 막내에게 한 병을 주고도 세 병이 남으면 한 병쯤은 내일 우물가에서 친구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달리는 발이 점차 빨라졌다.

논바닥에는 자운영꽃이 분홍빛으로 오보록하게 피어 있었다. 오렌지 맛 환타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는 꽃을 거들떠볼 겨를도 없었다. 뱀이 논두렁을 기어 다닐지도 몰랐지만, 환타가 뱀을 이겼다. 언니의 뒤꿈치만 보며 자운영꽃 사이를 내달렸다.

우리는 환타를 찾아 자운영꽃이 핀 논을 가로질렀다. 버슬버슬한 논흙 사이에서는 꽃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드러져 있었다.

트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멀리 아이들 몇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향하는 곳을 등지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손은 모두 비어 있었다. 언니의 발걸음이 차츰 느려지더니 멈춰 섰다.

“벌써 다 주워 가고 없어.”

그래도 언니는 내 손을 붙잡고 끝까지 가 보았다. 한창 보글보글 익어 가던 소꿉놀이와 오빠 손에 들린 오렌지 맛 환타를 뒤로한 채, 뱀이 드나드는 좁은 농로를 달려왔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깨진 음료수병 주위로 달큰한 내음이 슬밋슬밋 감돌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자운영꽃이 핀 논에 주저앉았다. 숨이 차고 목이 따끔따끔했다.

맥없이 자운영꽃을 한 움큼씩 꺾었다. 가느다란 꽃대를 하나씩 이어 목걸이를 만들며 돌아오는 동안 따갑던 목이 가라앉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환타는 서운함으로 남아 눅진하게 잦아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다 다시 뒤돌아본 논에는 마른 벼 밑동 사이로 자운영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벼를 심기 전 갈아엎어 거름으로 쓰던 자운영이었지만, 어린 내 눈에는 그저 논바닥 가득 펼쳐진 분홍 꽃밭이었다. 환타를 찾아 논을 가로질러 달렸던 날, 빈손으로 돌아온 우리 목에는 자운영꽃이 걸려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혀끝의 단맛보다 꽃대를 하나씩 이어 붙이던 손끝과 목에 닿던 여린 줄기의 감촉이 먼저 돌아왔다.

이제는 논에서 자운영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봄이 무르익던 무렵, 정읍의 용산저수지 아래에 자운영꽃이 피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논에는 벌써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고, 풀약을 맞은 자운영은 말라 있었다.

어린 날에는 지천으로 피어 있어도 귀한 줄 몰랐고,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한발 늦어 있었다. 뒤돌아본 논에는 봄 한철의 분홍빛이 누렇게 잦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