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룻번을 붙이던 새벽

by라이테

숫돌에 칼을 가는 소리가 나면 잽싸게 움직여야 했다. 까치발로 자줏빛 모란꽃이 박힌 양은 쟁반을 꺼내 왔다. 우물물 한 바가지를 끼얹자 매끈하고 불룩한 수박의 둥근 몸을 따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한가운데 다소곳이 앉은 수박에 칼끝이 꽂혔다. 수박이 이내 쩍 벌어지면 칼을 든 이도, 지켜보던 이도 그 붉은 속살 앞에서는 속수무바카라이었다. 햇빛을 쏟아 놓은 듯 발간 속살에 까만 씨가 콕콕 박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침을 삼키느라 목젖이 방아를 찧었다.

복숭아를 고를 때는 눈썰미가 좋아야 했다. 소쿠리 위를 재빨리 훑어 좋은 것을 먼저 점찍어 두었다. 뒤적뒤적 손을 대는 것은 반칙이었다. 메꽃빛이 들고 딱딱한 것은 살강살강 씹히는 맛이 새뜻했다. 말캉하게 잘 익은 것은 한 입 베어 물면 꽃향기 짙은 단물이 손금을 타고 팔꿈치께로 흘렀다.

한여름 간식이라면 으레 수박이나 복숭아를 떠올릴 법하다. 그러나 그런 과일은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별식일 뿐, 방학 내내 이어지는 아이들의 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삼복더위에 왜 하필 찐빵이었을까.

보리타작할 땐 뉘 집이나 하지감자가 새참을 도맡았다. 장마가 지기 전에 보리밭도 감자밭도 수확을 마쳐야 했다. 여름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막걸리, 아이들에게는 미숫가루였다. 낮은 길고 아이들은 우썩우썩 자랐다. 감자와 미숫가루가 동이 나면 옥수수와 사탕수수가 뒤를 이었지만, 긴 여름을 감당하기에는 늘 모자랐다. 푸성귀와 곡식이 차지한 텃밭에 참외와 수박은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방학으로 온종일 어슬렁거리는 여름풀 같은 자식들의 허기는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찾아왔다. 한 번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팠다. 이럴 땐 곡기를 가득 채워야 긴 오후를 버틸 수 있었다.

제사 때도 아닌데 광에서 팥 자루가 나오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팥은 전날 뉘를 골라내고 정갈하게 씻어 불려 놓았다. 어머니는 새벽 서너 시부터 팥을 삶기 시작했다. 팥을 한 번 포르르 끓인 뒤 첫물은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푹 삶았다. 팥이 물러지는 동안 밀가루 반죽을 치대어 놓았다. 온 집 안에 알싸한 팥 냄새가 자욱했다. 잠결까지 스며들었는지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부엌과 마당을 오가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수건을 쓴 어머니의 이마에는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린 손이 도울 게 있었다. 삶아진 팥을 대나무 소쿠리에 부어 놓으면 얼굴보다 더 큰 부채로 한 김 식혀야 했다. 부채를 양손에 번갈아 쥐고 부치면 뜨거운 김이 얼굴로 와락 달려들었다. 나도 어머니처럼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여름 새벽은 짧았다. 벌써 햇살이 마당에 쇠비름 번지듯 퍼지고 있었다. 부채질이 끝나자 곧바로 어머니는 팥을 나무 주걱으로 으깼다. 말없이도 척척 손발이 맞는 어머니와 딸이었다. 그럴 때 나는 소쿠리가 최대한 덜 흔들리게 테두리를 바투 쥐었다. 팥이 다 으깨지면 양은 대야에 쏟고 설탕은 나수, 소금은 살살 넣어 달달한 소를 만들었다. 허기가 느껴질 때쯤에야 잠시 한숨을 돌렸다.

어머니가 식구들의 아침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도르래로 샘물을 길어 세수하고 닭장 물그릇에 부어 주었다. 닭장 주변을 넘보는 쥐와 고양이는 강아지 메리가 단속했다. 그러나 달큰한 팥소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메리는 내가 발을 구르며 “메리, 안 돼.” 하고 말려야 했다.

부엌에서는 뚜딱뚜딱 도마 소리가 났고, 모기장 바른 격자문을 활짝 젖히면 받아쓰기 공바카라의 새 칸처럼 하루가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찜솥에 물을 부어 시루를 안쳤다. 찜솥과 시루 사이로 김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시룻번을 붙일 차례였다. 밀가루 반죽을 한 덩이 떼어 양손으로 마주 비벼 줄다리기 줄처럼 길게 만들었다. 시루와 찜솥이 맞닿는 가장자리에 빙 둘러 놓으면 어머니가 손으로 꾹꾹 눌러 마감했다.

양은 쟁반에 밀가루를 서리가 온 듯 나붓이 흩뿌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찐빵을 빚었다. 먼저 어머니가 한 개 분량의 반죽을 가늠해 보이면, 그때부터 눈대중으로 덩이를 떼어 놓았다. 덩이를 둥글려 손바닥에 올려놓고 팥소를 넣어 찐빵을 만들기 시작하면 설거지를 마친 언니도 달려들었다. 이런 날 점심과 간식은 찐빵이었으니 옥수숫대처럼 껑충하게 자라는 사남매가 들락거리며 먹을 만큼 빚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볕은 점차 툇마루 깊숙이 번지고 마당의 그늘은 사라졌다. 햇살이 올라탄 어머니의 등이 군불 지핀 아랫목처럼 뜨끈해져도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여름 팥소는 쉽게 시큼해져 만들자마자 서둘러 먹어야 했다. 먹어 치우는 입이야 재빠르지만, 만드는 손이 자식들 입을 앞서 나갈 수 있을까. 마음은 급하고 손은 더뎠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찜솥에서 찐빵을 꺼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땀인지 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물기가 더께더께 엉겨 붙었다.

자정 무렵에야 잠들었다가 동트기 전이면 다시 일어난 어머니는 빨랫줄에 걸린 덜 마른 옷 같은 하루를 또 껴입었다. 삼복더위에 찐빵이라니. 온몸이 땀에 젖도록 찐빵을 쪄서 뜨끈뜨끈한 채반에 내놓으면, 속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은 제 입에 넣기에 바빴던 시절이었다.

지난 늦가을, 기어이 유행하는 쿠키를 만들어 보겠다는 딸아이의 성화에 곁손을 보태게 되었다. 낯선 식재료와 도구를 마주하니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이 시들했다. 그래도 아이의 신난 얼굴에 맞춰 나도 즐거운 기색을 보였다.

딸아이가 떼어 준 반죽을 손바닥 위에서 둥글렸다. 벌어진 자리를 오므리고 손끝으로 살살 다독이는데, 내 손이 낯설게 익숙했다. 어디서 익혔는지 헤아릴 새도 없이 손가락은 반죽의 아귀를 여미고 있었다.

투명 케이스에 한 개씩 들어앉은 쿠키는 모양새부터 고독하고 반듯했다. 밀가루가 희끗희끗 묻은 손으로 포장된 쿠키 하나를 들어 올렸다. 힘줄은 아직 깊이 불거지지 않았지만, 반죽을 다독이는 손놀림만은 오래 익힌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다음 쿠키를 집어 들지 못하고 한참 손바닥만 들여다보았다. 잊은 줄 알았던 그 여름 새벽이 손끝에서 아직 김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