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은 밝다. 밝다 못해 화려함에 있어서는 낮이 감히 견주기 어려울 정도다. 낮의 빛은 태양 햇살 하나이지만, 밤의 빛은 사람이 만들어 수 놓은 색이다. 그리고 애초 목적이 그러한 이유로 밤의 빛은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그 빛이 아름다운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과 선택이겠지만, 이목을 이끄는 힘에 있어서 밤의 빛은 낮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쩌면 태초부터 밤의 어둠이 몰고 오는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의 노력은 승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밤의 현란한 빛이 나에게는 마음속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고난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모든 감각을 끄고 생각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점점 더 현란해지는 도시의 밤길 산바카라에서는 위안을 찾기 어려워짐을 느낀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밤의 어둠이 가져오는 위험과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서 밤의 화려함이 필요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 보니 조금씩 시간을 들여 사색의 시간을 허락하는 나만의 산바카라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길은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평탄한 계곡 길인데 다행히도 집 가까운 곳이라 늦은 시각 훌쩍 문을 나섰다가 피곤함이 발을 붙잡기 전에 돌아올 수 있어서 좋다.
마치 한밤의 산바카라을 즐기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밤 어둠과 고요 속 작은 움직임이 가져오는 불안함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한밤의 산바카라을 그리 자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실직고해야겠다. 이처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오늘 이야기는 밤의 산바카라에서 만난 밤 풍경에 관한 일이다.
어느 날, 마음속에 큰 질문을 얻었다. 그날 낮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 의문은 시간이 지나도 주변을 머물면서 커져만 갔다. 의문의 발단은 가볍게 생각했던 김장 나눔이었다. 마을에서 도시농부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인연으로 마치 품앗이하듯 이웃과 함께 김장하고 나눔을 했다. 나눔을 하면서도 쉽게 말하면 개인정보를 알 수 없어서 어느 누가 김장 나눔 한 김치를 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딘가 필요한 분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한 봉사였을 뿐, 벅찬 일상을 살아가면서 김장 나눔을 했다는 사실조차 흐릿하게 잊었는데, 그날 걸려온 전화 한 통, 그 너머의 한마디는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사람 먹을 것을 보내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전화기 너머 주고받은 어색한 인사와 덕담 뒤에 건너온 본심의 한마디는 사람 먹을 것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것이었다. ‘김치 보내줘서 잘 먹었다’라거나 ‘김치는 지겨우니 좀 다른 것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정도가 처음 전화 받았을 때 떠오른 예상이었다. 예상에서 벗어난 것도 그렇지만, ‘사람 먹을 것’이라는 말을 할 때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묻어 나는 회한, 고마움, 조금은 슬픈 감정이 해일처럼 나에게 밀려들었다. 그 감정이 너무 세차서 호흡을 두세 번 가다듬는 동안 답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오신 분에게도 내 작은 한숨이 전해졌는지 서로 얼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는데 손끝이 아릿했다.
사람 먹을 것, 그 문장이 던진 질문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 한동안은 조용히 마음속에 묻혀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묻어 둔 자리에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애써 가꾼 것도 아닌 자리에 피어나는 풀꽃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처럼 마음을 아릿하게 울리며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전화 주신 분이 그동안 받았을 김장김치도 누군가의 봉사와 땀과 애정의 결실이었을 것인데, 정작 받는 이에게는 그 정성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질문이고 아픈 가시였다. 이 의문은 곧 풀 수 있었는데, 봉사 행사로 열리는 김장 나눔은 수혜 대상 규모와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요한 이웃 모두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하다 보니, 수에 맞춰 예산을 나누게 되면서 그리 맛난 김장김치를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장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배추 선택부터 절이고 씻는 물 같은 사소한 것까지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사람 먹을 만한 것’을 만들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먹기 좋을 만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따르는 것이다.
그 뒤에 따라서 온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없다’라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해답은 간단하다. 누구에게라도 정성을 다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면 된다. 이 간단한 정답에는 수많은 오답이 숨어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충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정답은 알지만 실천할 수 없는 의문 앞에서 혼란스러웠다.
의문이 깊어진 어느 밤, 밤 산바카라 시간이 왔음을 느꼈다. 평소 생각해둔 밤길 코스를 걸어가서 작은 시냇물이 있는 마을 귀퉁이에 다다른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지난날 내린 초겨울 비가 모여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고요 속에 있었다. 한참을 시냇물 소리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덧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순간이 되었다. 고요 속에서 눈 뜨자 제일 처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시냇물에 비쳐 함께 흐르는 달그림자였다. 평소에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는데, 주변이 어둠 속에 조용히 가라앉은 덕분에 달빛 하나만 온전히 빛나고 있었다.
‘달은 천 개의 강을 비춘다.’
나중에서야 월인천강지곡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날 밤 산바카라에서 시냇물의 달빛을 보고 처음 떠오른 문장이었다. 그제야 마음에 안식이 찾아왔다. 나의 역할은 달빛이 비치는 천 개의 강, 그중에서도 이 작은 시냇물을 비추는 달빛 한 조각과 같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눈에 들어오는 강을 다 비출 수 없다고 이 작은 시냇물과 함께 흐르는 것까지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나만의 해답을 시냇물 속 달그림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뒤는 ‘안됩니다, 못합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누군가가 이만큼의 예산으로 몇백 개의 김장 김치통을 채워 보면 어떻겠냐고 하면 단박에 말한다. 못합니다. 안됩니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있었던 긴 이야기를 똑같이 해준다. 이 이야기를 듣고도 똑같은 요청을 하는 사람이라면 두 번 이야기 나눌 필요가 없었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이해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난해에도 상대가 원하는 만큼 엄청난 양의 김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참여하는 이웃 모두가 납득할 만큼의 맛 난 김장을 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모두가 다해서 준비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때 사람 먹을 수 있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밝힐 수는 없지만, 시냇물 하나는 비출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누군가는 그 작은 빛 조각에 의지해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지도 모르니, 멈추거나 포기하기보다 할 수 있는 만큼, 담을 수 있는 만큼 정성을 채우면 그것으로 되었다 싶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한 조각 빛은 더 밝아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