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가까워질수록 두려웠다

by온기작가

나는 사람을 원했다.

그저 외롭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야 내가 여기에 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졌다.
그래서 관계는 나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관계가 나를 가장 깊이 무너뜨리는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나는 빠르게 깊어졌다.
상대의 말투, 표정, 메시지 하나에 하루의 감정이 결정되었다.

연락이 오면 살아나는 기분이었고 답장이 늦어지면 버려진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버려지지 않는 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확인했다.
“나 좋아해?”
“왜 답이 늦어?”
“변한 거 아니지?”

그 질문들은 사랑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던지는 구조 요청에 가까웠다.

상대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조금만 달라져도 느껴졌다.
말투의 온도, 눈빛의 거리감,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공기의 변화까지.

그럴 때마다 나는 더 불안해졌다.

그래서 더 붙잡았다.

더 확인하려 했고, 더 감정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럴수록 관계는 더 빠르게 무너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관계를 망치고 있었다.

상대를 붙잡으려는 행동들이 결국 상대를 밀어내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나는 그저 필사적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먼저 멀어졌다.

연락을 일부러 늦게 하고 마음을 숨기고 애초에 깊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떠날 거면 내가 덜 사랑할 때 끝내는 게 낫잖아.”

이건 회피가 아니라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 역시 나를 지키지 못했다.

가까워지면 무너지고 멀어지면 공허해졌다.

나는 그 사이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었다.

그 결과는 늘 같았다.
관계는 끝났고 나는 또 나를 미워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왜 나는 정상적인 관계 하나 못 할까.”

자기혐오는 습관이 되었고 수치심은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 모든 패턴이 경계선 성격장애에서 흔히 나타나는 관계 양상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사실이 나를 안심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괴로웠다.

“나는 병이구나.”
“나는 고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나를 낙인찍었다.

그러나 상담을 배우면서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불안했을까?”
“왜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문제’가 아니라 ‘과정’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나에게 관계는 단순한 친밀감이 아니었다.

관계는 ‘안전’이었고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어릴 때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감이 성인이 된 이후의 관계에서 과도하게 요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면 항상 과해졌고 과해진 만큼 무너졌다.

이해는 면죄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 비난 대신 해석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어?”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로.

그 작은 변화가 내 안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상담사가 되어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관계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너져내리지는 않는다.

불안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곧바로 행동으로 쏟아내기보다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지금 버려질까 봐 무서운 거구나.”

이 한 문장이 나를 붙잡아준다.

나는 이제 안다.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도 진짜였고 두려웠던 것도 진짜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 장을 쓰며 나는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망가진 사람이 아니었어.
그저 너무 오래 혼자 견뎌온 사람이었을 뿐이야.”

이 바카라은 고백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경험을 다시 해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깨닫는다.

회복은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해는 누군가를 만나는 방식까지 조금씩 바꿔놓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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